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
혁신형 SMR(i-SMR) 기술개발사업단이 지난 2월 6일 법인등기를 마쳤다. 초대 단장으로 김한곤 박사를 선임한 사업단은 앞으로 6년간 i-SMR 개발 사업을 담당한다. 법인등기에 앞서 열린 i-SMR 국회포럼에서 ‘i-SMR 개발현황 및 수출촉진 방안’이 발표되었다. 중요한 내용이 많았지만 눈길을 끈 대목은 ‘국내 고유기술 적용’과 ‘반복 건설 및 다수 모듈 고려’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적재산권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고, 여러 개의 모듈 생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적재산권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다수의 모듈이 생산되어야 생산비 단가를 낮출 수 있어 수출이 가능해 진다.
또한 앞서가고 있는 뉴스케일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조기사업화를 추진해야 하며 2031년까지 최초의 모듈을 완공해야 한다는 일정도 발표되었다. 조기사업화의 방법으로 기술개발과 관련 인허가 절차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기술개발이 완료된 뒤에 인허가 절차를 검토해서는 너무 늦다는 말이다. 다행히도 포럼에 참석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도 같은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리고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하고 연구와 홍보, 마케팅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 밖에도 해야 할 일이 산처럼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은 그 중에서도 필자가 생각하는 i-SMR 개발 성공의 몇 가지 필요조건이다. 첫째, 실증로의 국내 건설은 꼭 필요하다. i-SMR 안전성은 최신 대형원전 APR1400에 비해서도 한층 강화되는데 국내 건설을 추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몇 년전 i-SMR은 수출을 전제로 개발되는 것이라며 국내 건설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 입장은 공식적으로 아직 철회된 바 없다. 우리가 개발한 원자로를 우리나라에는 건설하지 않고 수출한다고 한 것은 지난 정부가 했던 궤변이다. 상식에 반할 뿐만 아니라 수출이 될 리도 없다. 수입국의 관점으로 보면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시장에 많은데 만든 나라도 안 쓰는 물건을 굳이 살 이유는 없다. 2031년까지 최초 모듈을 생산하고 현장 건설 후 2033년에 운전을 하려면 늦어도 2028년까지는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산업부는 조속히 입장을 정리하고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둘째, SPC 설립도 서둘러야 한다. 삼성, 현대, GS, 두산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해외 SMR 개발사에 거액을 투자했다. 투자시 개발사와 약속한 예상사업은 주기기 제작, EPC(설계, 조달, 시공), 디벨로퍼 등이다. 국내 기업들이 앞다투어 SMR에 투자하는 이유는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애국심을 앞세워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의 문호를 개방하고 더 높은 메리트가 있음을 보이면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자본들도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대형원전이 국가적 중요성이나 막대한 투자비, 사업성공의 높은 불확실성으로 국영사업이 될 수 밖에 없었다면 i-SMR은 대형원전과 조건이 사뭇 다르다. 민간과 합자하여 사업을 펼치면 연구나 마케팅 측면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가가 원전사업을 영원히 주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셋째,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물량 확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량생산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i-SMR의 경제성은 확보하기 어렵다. 세계 최초의 원전인 영국의 콜더 홀 원전이 50MW 수준인 데 비해 중국 타이산 원전의 단위기 용량은 1750MW다. 2006년 태양광의 FIT(고정가격제)는 kWh당 716원이었는데 현재의 정산단가는 120∼15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자는 단위기의 규모를 키워서, 후자는 대량 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시현했다. 해외 자본 유치가 중요한 것도 물량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성공 필요조건은 i-SMR 기술개발이 원활히 진행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i-SMR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