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가치 좀먹는 정치셈법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4.02 11:10

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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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KT다. NH, 신한, 우리금융지주 등 굴지의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인선이 3월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완전히 봉합됐지만, KT 대표이사 선임을 둘러싼 잡음은 현재진행형이다.

KT의 상황을 보면 차라리 국내 금융사 인선은 빠르게, 조속하게 마무리됐다고 느껴질 정도다. 금융사 스스로도 관치금융, 주인 없는 회사라는 이름표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CEO에 낙하산이 오더라도, 낙하산이 올 조짐이 보이더라도, 당국이 금융사의 CEO 인선에 과도하게 개입한다고 느껴질지라도 금융사 직원들과 주주들은 으레 또 올게 왔구나 싶다. 금융사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도 길어야 한 달을 넘지 않는다.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노조의 몽니이자 고집, 아집으로 비춰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개월 가까이 이어진 이른바 KT 사태는 어떠한 각도로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작년 말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CIO)가 구현모 당시 KT 대표를 차기 대표 후보로 결정한 것을 두고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이어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도 논란 끝에 후보직을 사퇴했으며, 사외이사 2명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대표이사 후보가 사의를 표명한 것은 사외이사진 스스로 KT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가 강충구, 여은정, 표현명 사외이사의 재선임 안건에 대해 "지배구조와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중대한 실패를 했다"며 반대를 권고한 것이 이러한 의구심을 뒷받침한다. 구현모 대표가 법인 돈으로 상품권을 사들인 뒤 되파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약식 기소됐는데, 사외이사진들이 이에 대해 특별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 ‘지배구조 및 관리감독 실패’의 방증이라는 게 ISS의 진단이다.

이들 이사진 재선임 안건에 대해서는 2대 주주(7.79%)인 현대차그룹도 반대했다. 결국 이들 사외이사 후보 3인은 31일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동반 사퇴했다. 현재 KT 이사회는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출신인 김용헌 사외이사만 남게 됐다.

KT의 지배구조가 불안정하고, 사외이사진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일각의 지적도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KT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정부, 여당의 의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달 초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를 "구현모 아바타"라고 평가 절하한 사례만 봐도 그러하다. 이들은 검찰과 경찰을 향해 "구 대표, 일당들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개 기업의 CEO인선에 정치권까지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KT의 이사회가 사실상 해체된 것은 "관치경제를 넘어 권치경제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갈한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발언에 수긍이 가는 이유다.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은 주주의 피해, 고객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당장 KT 주가는 올해 들어 12% 넘게 급락했다. 경쟁사인 SK텔레콤 주가가 2%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11% 올랐다. KT의 주주 행세를 하고 싶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스스로 자중해야 하는 이유다.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리포트에서 "CEO 선임 후에도 향후 3년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최소 한 개 분기가 소요되고, 11월부터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2024년 경영목표 수립을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올해는 최고 의사결정권자 부재 속에 KT가 시스템으로만 움직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KT 주주 입장에서는 정부, 정치권, KT이사회 모두 곱게 보일 리 없다.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는 이젠 일상화된 정부, 정치권의 개입이라는 ‘구태’를 차곡차곡 끊는데 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medias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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