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
현대 물질문명은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인류는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널리 사용했으나 18세기 말부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졌다. 여기에는 15~17세기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선박을 만들기 위한 목재 수요가 증가한 것도 한 몫 거들었다. 숲은 황폐해져 갔고 공장은 가동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석탄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석탄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발열량이 높으며 매장량이 충분해서 인기를 얻었다. 석탄은 증기기관, 선박, 발전소 등에서 사용됐고 이를 통해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동차 산업의 성장에 따라 석유 수요가 급증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석유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 됐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투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동 지역에서 석유 생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석유의 시대가 도래했다. 1970년대 이후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급등하자 전 세계적으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천연가스 사용을 확대했다. 석탄에 비해 온실가스가 덜 배출되는 천연가스는 화석연료의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수요가 더욱 늘어났다.
1980년대 들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자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사용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 등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고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에 대해 서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인식 아래 19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에 대해 2008~2012년에 1990년 대비하여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했다. 이 때 선진국들의 감축 의무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교토메커니즘이라고 부르는 3대 시장메커니즘이 도입했다. 바로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 공동이행(Joint Implementation),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다. 이 가운데 선진국들이 개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지원을 통해 발생한 감축량을 자국의 감축 의무에 활용하는 청정개발체제가(CDM)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추진됐다. 중국은 청정개발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이 때문에 ‘CDM는 중국개발체제(China Development Mechanism)의 약자’ 라고 불리기도 했다. 교토의정서가 2020년 만료되자 국제사회는 오랜 협상을 거쳐 2015년 파리협약을 채택했다.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지 3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화석연료 소비를 얼마나 줄였을까? 1차 에너지 기준으로 전 세계는 기후변화협약 체결 원년인 1992년에 약 82억3000만 TOE(석유환산톤)를 소비했으며 이 중 화석연료가 71억8000만 TOE로 전체의 87.3%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총 소비량 132억9000만 TOE에 화석연료는 110억5000만 TOE로 비중이 83.1%다. 산업화와 인구증가, 경제성장 등으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약 30년 새 1.5배 이상 늘어난 가운데 전체 소비량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간(4.2%포인트)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80%이상을 화석연료에 의존해 살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30세를 넘었다.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는 30세를 ‘뜻이 확고하게 섰다’는 의미의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최근에 기후변화 음모론과 같은 이야기들이 줄어들고, 기후변화가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인한 것이라는 데 대부분 공감하는 것은 기후변화협약이 이립에 들어섰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은 필자만의 희망 섞인 바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30년 동안 화석연료 비중이 4.2%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2050년 탄소중립까지 앞으로 30년 동안 우리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했을 때 경험했던 에피소드로 글을 마친다. 당시 공식 회의석상에서 한 태평양 도서국가 대표가 자기들과 같은 국가들은 해수면이 높아져서 국토가 사라져가고 있다며 협상 타결을 눈물로 호소했다. 잠시 회의장이 숙연해지는가 싶더니 금새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고성을 주고받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