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옜다'가 된 예타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4.14 07:29

예타가 ‘옜다’가 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는 12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게 골자다. 슈퍼야당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건전 재정을 중시하는 집권 국민의힘도 힘을 보탰다.

개정안은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이달 본회의 통과가 예상된다. 예타는 원래 재정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견제하는 장치다. 지금은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옜다’ 하고 주는 선물이 됐다. ‘옜다’가 된 예타,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자.


◇ 예타를 대하는 태도는 정권마다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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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신공항 조감도.사진=연합뉴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직후에 들어선 김대중정부는 긴축 정책을 폈다. 돈줄을 조이는 게 긴축이다. 예타는 그 맥락에서 1999년에 도입됐다. 그때는 예산회계법으로 재정을 통제했다. 예타는 시행령에 담겼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인 ‘대규모 개발사업’을 대상으로 삼았다.

노무현 정부는 예타의 기본정신에 충실했다. 예산회계법을 폐지하는 대신 2007년 국가재정법을 제정했다.

둑이 무너진 건 이명박 정부 때다. 4대강 사업은 심각한 저항에 부닥쳤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예타 면제를 남용했다. 이때만 해도 면제는 시행령, 곧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졌다.

박근혜 정부는 같은 보수정권이지만 예타는 깐깐하게 다뤘다. 2014년 4월 국가재정법은 전환점을 맞는다. 국회는 먼저 시행령에 담긴 예타 적용 규모를 법률에 못박았다. 개정안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중앙정부 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사업은 예타를 받도록 했다(38조 ①항). 동시에 예타 면제 규정도 법률로 정했다(38조 ②항). 당시 법률안 개정 이유를 보면 "예타 실시 대상 및 면제 대상을 직접 법률에 규정하고…행정부의 자의적인 집행을 방지하고 투명성과 실효성을 제고한다"는 점을 들었다.

진보 문재인 정부는 예타만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닮았다. 2019년 1월 정부는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내놨다. 24조원 규모의 23개 대형사업을 예타에서 제외하는 게 핵심이다. 당시 진보 성향의 경향신문조차 "무더기 ‘SOC 예타’ 면제, ‘이명박 4대강’과 뭐가 다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끄덕하지 않았다. 2019년 4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예타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예타 점수를 매길 때 비수도권 지역은 경제성 비중을 5%포인트 낮추는 대신 지역 균형발전 비중을 5%포인트 높였다.

2020년 가을엔 국회 기재위 소위 여야 의원들이 예타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 이상, 국비 500억 이상인 SOC 사업으로 바꾸는 데 잠정 합의했다. 정부도 예타 도입 이후 국가 재정·경제 규모가 커졌다며 기준 상향에 반대하지 않았다.

예타 면제의 하이라이트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다.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앞다퉈 부산을 찾았다. 국민의힘도 특별법에 반대할 처지가 못 됐다. 결국 예타 면제 조항을 담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국회를 가볍게 통과했다.

보수 윤석열 정부에서도 예타 면제는 지역에 선물처럼 주어진다. 13일 국회에서 여야는 예타 면제 내용을 담은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같은 날 처리된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은 ‘국방 관련 사업’으로 분류돼 현 국가재정법 상으로도 예타 제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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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13일 본회의를 열고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을 의결했다.사진=연합뉴스


◇ 국회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의원들도 할 말이 있다. 먼저 예타 기준 완화는 3년 전에 여야가 잠정 합의한 내용이다. 이번에 그 합의를 소위에서 의결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현행 총사업비 500억원은 분명 불합리한 점이 있다. 500억원 기준은 올해로 24년째다. 경제 규모로 보나 물가로 보나 24년째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한국은행 국민계정에 따르면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999년 591조원에서 2022년 2150조원(잠정)으로 3.6배가량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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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민연금 수령액이 크게 올랐다. 지난해 껑충 뛴 물가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해마다 물가와 연동해서 지급한다. 만약 24년째 같은 기준을 적용해서 지급했다면 난리가 났을 거다. 음식값도 아파트 분양가도 물가가 뛰면 덩달아 오른다.


◇ 재정준칙 도입해야 설득력


그런데도 기재위 소위가 예타 기준을 완화하자 비판이 쏟아진다. 예타 기준을 누그러뜨리면 내년 총선에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전국 어느 곳이나 더 많은 도로, 철도를 깔고 싶어한다. 경제성이 있든 없든 도로와 철도를 놓고 공항을 설치하는 게 의원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지역구 의원들이 예타 기준 완화에 목을 매는 이유다. 이 점에선 여야가 다를 바 없다.

한편으로 의원들은 재정준칙 도입에 소극적이다. 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수년째 국회에 묶여 있다. 돈줄 조이는 건 반대하면서 돈 쓸 궁리만 하고 있으니 납세자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

24년째 꽁꽁 묶인 예타 대상 기준을 두 배(500억→1000억원)로 올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선심성 정책이 난무하지 않도록 따로 제동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재정준칙 도입은 괜찮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준칙을 도입하면 나라가 쓸 수 있는 재정 총량을 규제할 근거가 생긴다. 그래야 국회가 예타 기준을 완화해도 설득력이 있다.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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