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과도한 삭감 무효”… 절반만 주는 증권가 줄소송 비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5.18 15:47

최근 판결로 관련 판례 잇따를 듯… 증권가 대책 고심



증권 등 금융권, 인센티브 많고 고액이라 편법식 관행



업계 “사실상 삭감 폭 제한 처사”… 신규 채용 위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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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임금 삭감 폭이 과도한 임금피크제의 경우 무효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증권가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일대. 사진=김기령 기자


[에너지경제신문=김기령 기자] 법원이 최근 과도하게 낮은 급여 수준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을 내면서 타 업종 대비 급여 삭감 폭이 큰 증권가에 비상이 걸렸다. 줄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증권가도 대책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 임금피크제 과도한 삭감 법원서 제동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KB신용정보 전·현직 직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KB신용정보는 2016년 2월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고 정년을 기존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5세부터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성과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 연봉의 45~70%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해당 직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았으면 받게 될 임금과 퇴직금 차액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아무런 보상 조치 없이 임금을 삭감한 것은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다.

재판부는 임금 삭감 폭이 과도하다고 보고 청구 금액인 5억4100만여원 중 5억3790만여원을 인정하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근무기간이 2년 더 늘었음에도 만 55세 이후 받을 수 있는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손해의 정도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업무강도는 임금피크제 이전과 비슷하기 때문에 임금만 삭감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 증권사 반토막 주는 관행 등 논란거리


앞서 지난해 신한투자증권, KB증권에서도 직원들이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 임금 청구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소송은 아직 진행 중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또 다른 판례들이 등장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타 업종의 임금 삭감은 5∼10% 수준이지만 임금이 높은 금융권의 경우 50%까지 적용하는 곳들이 많다. 특히 증권업계는 기본급만큼 인센티브가 높은 업종 특성상 임금피크제 시행 시 근로자가 받게 되는 금액 자체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50% 삭감은 가혹한 처사"라며 "인센티브로 스스로 월급을 보전하거나 삭감된 임금으로도 다닐 사람은 다니라는 일종의 강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임금 관련 소송을 늘리는 하나의 판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A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금융업계가 임금이 높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삭감 시 그 규모가 크게 느껴질 수 있다"며 "추후 관련 소송이 더 늘어날 여지도 충분히 많을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B 증권사 한 관계자도 "금융업은 아무래도 노동 강도를 뚜렷한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 수준을 책정하기 쉽지 않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판례가 더 많이 쌓이게 되면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 노사 갈등 단골소재… 기업은 부담 증가

신규 인력 채용 관점에서 봤을 때 임금피크제 내용 조정이 쉽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C 증권사 한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관련 노사 간 갈등은 꾸준히 있어왔다"며 "불과 어제 판결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당장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로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판결은 임금 삭감에 상한선을 두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에 근로자 입장에서는 법원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긍정 효과가 있지만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던 기업들에게는 사실상 부담이 될 것"이라며 "특히 금융권에서도 은행 등 인력이 정체된 업계에서는 신규 채용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giryeong@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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