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4주년] 이신형 조선학회장 "韓 조선, 위상 높아…글로벌 톱티어 협의체 구축 주도해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5.26 06:00

"韓 조선사들은 압도적 기술 개발을 통한 초격차 유지해야"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 제고 위해 정부의 '통큰 투자' 필요

이신형

▲이신형 조선학회장(서울대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에너지경제신문 이승주 기자] "우리 정부는 국내 조선업계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이용해 글로벌 협의체나 커뮤니티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톱티어 기업 혹은 국가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주도해서 다른 이들이 우리 업계 얘기를 경청할 수 있게 하자. 이게 올바른 정부의 역할이다."

이신형 조선학회장(서울대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교수)은 <에너지경제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주장했다.

이 회장은 "국내 조선사들이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압도적 기술력’ 밖에 없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며 기업들의 기술 개발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 국내 조선산업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지난 기간 불황에 시달리던 조선업이 호황을 맞이한 이유를 진단하자면?

▲조선업이 호황을 맞이한 이유는 환경규제로 인한 선주들의 친환경 선박 발주량 증가 때문이다.

해운업계 환경규제로 인해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났다. 물론 환경규제가 최근 1∼2년 사이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고,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런 규제가 있을 것이라는 건 예측됐었다.

그 전까진 에너지설계지수(EEDI)라는 신규 선박에 대한 환경규제가 있었으나 그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다만 올해부터 시행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EEXI/CII는 현재 존재하는 선박에 대해서도 적용되며 상황이 변했다. 선주들은 ‘과연 내가 벌금을 물면서 노후 선박을 운영할 것인가, 이 참에 선박을 새로 건조할 것이냐’라는 사이에서 주판알을 팅겨볼 수 밖에 없고, 결국 친환경 선박을 발주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 국내 조선업계가 강점을 가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 증가도 요인으로 꼽히는데.

▲LNG운반선 발주량 증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으로 LNG를 공급하던 파이프라인(노르트스트림)이 막혀버렸고, LNG를 옮겨올 곳이 바다 밖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LNG 수급을 해상 운송에 의존하다 보니 선주들이 발 빠르게 LNG운반선을 확보하려는 탓에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 올해 세계 선박 발주량이 49% 감소할거란 전망에 더해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도 매섭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국내 조선사들이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압도적 기술력’ 밖에 없다. 여기에 지원해야 할 것이 ‘규제 선도’다.

우리나라가 "LNG연료 선박은 우리가 앞서간다, 메탄올 선박은 수주를 많이 했다"라고 하는데 중국도 우리만큼 수주가 많지 않겠지만 다 하고 있다. 중국이 인공위성 띄워서 달에도 가고, 온갖 기술을 다 가지고 있는데 왜 못하겠나. 우리가 단순히 ‘1cm’ 앞선 것 가지고 안도해선 안된다. 압도적 기술력으로 차이를 벌려야 한다.

- 그렇다면 향후 미래 기술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그런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앞으로는 어떤 연료·선종이 대세가 될 거야"라는 생각은 틀 안에 갇혀 있는 사고다.

틀을 깨고, 판을 새로 짜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조선·해운·에너지가 맞물려가는 상황 속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여기에 수반돼야 되는 게 법 제도와 정책 그리고 금융이다. 조선·해운·에너지·법과 제도·금융 등 5가지 요소가 잘 조화돼 완전히 다른 선박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선박이 바뀌면 물류가 달라지고, 차례로 인프라와 거버넌스도 변화할 것이다. 그렇게되면 우리는 종합 물류를 기반으로 한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 국내에서는 아무도 이를 시도하지 않고 "내후년에는 메탄올이 뜰까요, 안뜰까요?" 같은 얘기만 하고 있다.

- LNG운반선에 들어가는 화물창 기술을 프랑스 GTT사가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척 당 100억원이 넘는 외화 유출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국내 조선사들은 "LNG화물창을 힘들여서 개발하다가 실패하느니 그냥 비용을 줘버리자. 선주들이 GTT 기술을 오히려 신뢰한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제조업에서는 ‘buy or Build’와 같은 형태가 많다. 내가 직접 만들 것인가, 사서 쓸 것인가? 했을 때 사서 쓰는 걸 택한거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GTT 화물창 기술 번호가 No.96다. GTT는 그 만큼 실패를 계속한 것이고 결국 대박 나서 전 세계를 석권했다.

화물창 문제를 떠나서 최근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기술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현재 선박의 모습은 불과 70년 정도 밖에 안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박은 계속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사들이 조선 코어 기술인 ‘조선 공학’과 여러 비(非) 코어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 최근 조선사들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주목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나.

▲굉장히 가능성 있고, 바다에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선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벙커링이다. 운항중인 선박에 연료를 공급해야 하는데 메탄올·암모니아·수소 모두 벙커링이 구비되지 않으면 어렵다.

원자로를 선박에 적용하게 되면 이론상 40년 동안 연료를 안 넣어도 다닐 수 있다. SMR에서 나오는 전력을 통해 수소도 생산할 수 있으니,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하는 선박도 가능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 문제다. 그 부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먼 바다에 모듈화된 인프라를 구축하면 해결된다. 최소한의 인력을 통해 선박의 유지·보수·관리가 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배가 짐을 싣고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할거냐’라는 것도 결국 해결될 문제다. 항만에 안 들어가면 된다. 미래에는 드론이나 무인 수상정이 선박에 물류를 싣고 가져갈거다. 물류에서 분류하는 미들·라스트마일 개념이 축약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인프라는 조선·해운·에너지·법과 제도·에너지가 함께 움직여서 하나의 큰 생태계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조선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는 ‘인력난’이다. 조선업은 타 제조업 대비 낮은 임금과 고강도 노동으로 기피되는 상황인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조선사들이 국내 인력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다. 그 돈 받고 누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하겠나. 국내 인력 확충은 조선사들이 직접 찾아봐도 안 될거다. 조선업계 인력 문제는 ‘현장인력’과 ‘고급인력’ 두 쪽으로 나눠서 봐야 한다.

현장 인력에 대해 말하자면, 현재 국내에서는 낮은 인건비에 누구도 조선소에서 일을 안할 거다. 중국 조선소 현장 인력은 일 년에 2000만원 정도 번다. 사실 되게 적게 받는 것 같은데, 중국은 생산성이 떨어져서 우리나라 한 사람이 할 일을 세 사람이 나눠서 한다. 국내 조선소는 중국 사람 세 명 몫인 6000만원을 줄 수 있게될 때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또 하나 방법은 법과 제도를 바꿔서 외국에서 사람들을 들여오는 것이다. 돈을 쥐어주고 외국 사람들을 들여오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하는 ‘싱가포르식 노동 제도’를 답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 야드화가 필수적이다. 이는 선박 건조 자동화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서 사람을 안 써도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조선소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다만 조선사들은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하냐’고 반응할 것 같다. 내가 37년 동안 조선업계를 보고 있는데 위기경영을 안한적이 한번도 없다. 고급인력 부문은 명확한 해답이 없을 것 같다. 외국에서도 데려올 수 없다. 우리나라만큼 똑똑한 애들이 조선 공부하는 국가가 없다.

조선사들은 고급인력들이 떠나지 않게 충분히 자부심도 주고 직업 안정성, 돈도 보장해줘야 한다. 그런 미래가 있다면 고급 인력들 충분히 나올 수 있다.

- 조선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다수 발표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와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현재 정부는 철학이 없다. 무정부보다 무능한 정부가 낫다고들 하니, 아예 잘못된 것보다 나을 수는 있겠다.

왜 그러냐 하면 먼저, 우리나라는 모든지 즉각 대응밖에 못한다. 윗 선에서 그런걸 원하니까. 두 번째, 정부 정책의 철학이 당장 눈앞에 ‘찔금찔금’ 하는 게 문제다. 정권이 바뀌든 말든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틀을 깨고 판을 새로 짤 수 있는 통 큰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맨날 ‘찔끔찔끔’ 하니까 효과가 하나도 안 나온다.

글로벌 커뮤니티 국제해사기구(IMO)는 전 세계 해양산업을 좌지우지한다. 우리나라는 IMO의 ‘카테고리 A(주요 해운국)’ 국가에 10여 년째 있지만 목소리 조차 쉽게 낼 수가 없다. 우리 정부는 쓸데 없는 R&D에 투자하지말고 국내 조선업계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이용해 글로벌 협의체나 커뮤니티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톱티어 기업들 혹은 국가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주도해서 다른 이들이 우리 업계 얘기를 경청할 수 있게 하자" 이게 올바른 정부의 역할이다.

■이신형 조선학회장(서울대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조선공학 학·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기계공학 박사 △일본 해상기술안전연구소(前 선박기술연구소) 연구원 △대한조선학회 제36대 회장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해군 제10기 해군발전자문위원회 위원 △한국선급 기술위원회 위원 △한국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정책자문위원 △미국조선학회(SNAME) 석학회원 △영국 왕립조선학회(RINA) 석학회원 △한국전산유체공학회 수석부회장


lsj@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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