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대응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5.23 08:00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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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의 제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된 미국은 자국우선주의에 초점을 맞춘 공급망 강화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와 전기차를 양대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법을 잇달아 제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2년 8월9일 ‘반도체과학법’( CHIPS Act)에 서명한 데 이어 1주일 뒤인 같은 달 16일에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서명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입법으로 한국 기업들이 곤경에 처했다.

반도체과학법은 중국 등 비우호국으로의 투자를 차단한다는 내용이 핵심으로 ‘가드레일 조항’을 담고 있다. 미국 상무부와 기금(보조금 지원) 협정을 맺는 기업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 등 ‘우려국가’에서 미국의 동의없이 반도체 제조역량의 ‘실질적 확장’과 관련된 주요 거래를 할 수 없다. 이어 나온 세부지침은 특정 첨단 컴퓨팅 반도체 및 수퍼컴퓨터용 반도체 칩 등에 대한 제한적 수출 통제와 특정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을 ‘외국 기업’(multinationals)이 소유한 경우는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기로 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중국 현지 한국기업 반도체 공장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1년 동안 수출 통제 유예를 뒀다.

그런데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한미 경제안보포럼에서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이어서 미 상무부가 공고한 미국 반도체지원법상의 인센티브 프로그램 중 반도체 제조시설에 대한 재정 인센티브의 세부 지원계획도 독소 조항이 많다. 이것은 초과이익 환수와 예상 현금(기대수익)흐름 제공, 국방·안보용으로 쓰이는 첨단 반도체 시설 접근권 등으로 과도한 경영 간섭이며 기술유출 우려도 제기된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들이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보조금을 거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미국은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뉴욕· 실리콘밸리 등에 반도체 관련 최첨단 기술과 관련된 고급인력들이 상주하고 있어 미국 기업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규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에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더 벌릴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내수시장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미국과 소규모 내수시장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상이한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에 일방적인 순응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특히 현실적으로 중국에 큰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고, 외국 정부를 상대로 조율하기에는 벅차다. 더구나 반도체라는 우리 핵심 산업의 운명을 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는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생존과 발전이 걸린 문제다. 수출 통제 유예기간이 오는 10월로 도래하는 중국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은 ‘발등의 불’이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이후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서 생산 활동을 하는 한국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비반입기준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경쟁으로 다방면의 영역에서의 대결과 디커플링이 혼재함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더구나 통상이 안보와 밀접하게 연계된 복합적인 국제 통상환경 아래서는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외국의 다양한 입법과 행정 조치 동향을 적시에 파악하고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험난한 국제 통상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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