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알박기를 없애려면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17 16:18
2022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지표 말하는 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2022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지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16일 공공기관장 5명에 대한 해임을 건의했다. 또 다른 기관장 12명은 경고 조치 대상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이다. 기관장 17명에게 인사 조치를 내린 것은 지난 1984년 공공기관 평가가 시작된 뒤 가장 많은 숫자다.

그런데 17명 가운데 16명이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사람들이다. 자연 윤석열 정부가 ‘알박기’ 인사를 솎아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후속 조치로 공공기관장 물갈이가 대폭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장 알박기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를 두고 전·현 정부가 으르렁댄다. 보수·진보가 다르지 않다. 참 소모적이다. 이를 해결한 방안은 없을까? 차라리 이럴 바에야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공기업은 사실상 ‘공신전’

조선 태종 이방원은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전권을 장악한다. 이때 이복동생 방석과 정도전이 살해된다. 방원은 큰 공을 세운 29명에게 정사(定社)공신이란 칭호를 내렸다. 공신은 죄를 지어도 용서받았다. 요즘 말로 하면 면책특권이다. 1등 공신 12명에겐 상으로 전(田) 200결(結), 노비 25명 등을 하사했다.

공신전의 전통은 형태를 달리할 뿐 지금도 살아있다. 다만 땅이 공공기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군부독재 시절엔 군인들이 공공기관장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빈번했다. 민주화 이후엔 정치인 몫으로 돌아갔다.

대통령 후보가 되면 대형 캠프를 꾸린다. 자기가 민 후보가 이기면 한 자리 차지하려는 이들이 캠프에 합류한다. 일부는 정치판으로 가고 일부는 고위공무원이 되지만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때 공공기관 이사장, 사장, 감사만큼 캠프 출신 인사들을 다독이는 데 요긴한 자리도 없다. 통상 임기 3년 동안 연봉 수억원을 챙길 수 있어서다.

이러니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공공기관 낙하산 투하가 끊이지 않는다.

◇직권남용·블랙리스트 부작용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공공기관장 임기는 통상 3년이다. 임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권말 낙하산이 늘 알박기 말썽을 부른다. 전 정권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이 버티면 이를 솎아내려 종종 무리수를 둔다. 그러다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2022년 1월 대법원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그는 산하 공공기관 임원 교체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했다.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사람들을 갈아치우려다 생긴 일이다.

연초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백 장관 등은 정당한 사유 없이 산하 공공기관장한테 사표를 내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한덕수 총리도 직권남용 논란에 휩싸였다. 한 총리는 작년 6월 기자간담회에서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거취를 묻는 질문에 "바뀌어야지. 우리하고 너무 안 맞는다"고 말했다. 며칠 뒤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인 홍장표 당시 KDI 원장은 "생각이 다른 저의 의견에 총리께서 귀를 닫으시겠다면 제가 KDI 원장으로 더 이상 남을 이유는 없다"며 물러났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한 총리가 직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장 임기 정책에 변화가 없는 한 정권 교체기에 나타나는 직권남용 또는 블랙리스트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무자격 낙하산도 채용 비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채용 비리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무총장 등 고위간부 자녀들의 ‘아빠 찬스’ 의혹이 불거졌다. 종종 민간 기업들도 특혜 채용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 누군가 연줄을 동원해 은행이나 공기업처럼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특히 청년층이 분노한다. 대기업 노조가 자녀를 특혜 채용할 것을 요구해도 욕을 먹는다.

곰곰 생각해 보자. 정권을 잡으면 대선 캠프 인사, 곧 자기 사람을 연봉이 센 공공기관의 임원으로 줄줄이 내려보낸다. 형식상 공개 채용 절차를 밟지만, 정권에 줄을 댄 인물을 낙점한 경우가 흔하다. 정치밖에 모르는 문외한을 보낼 때도 있다. 이를 보은인사라고 한다. 공공기관 임원 인사에 엄격한 채용 비리 잣대를 대면 특혜투성이, 비리투성이다.

◇우상호식 해법

작년 7월 우상호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임기제 공무원의 임기와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우 위원장은 "어떤 자리든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철학과 노선을 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부기관을 짜는 것은 맞다"며 "임기가 자꾸 불일치하고 이에 따라 거취 논란이 반복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임기제 공무원 대상을 분명히 정한 뒤 예컨대 임기를 2년 6개월로 맞춰 대통령이 취임 초에 한번, 집권 후반기에 다시 한번 임명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호 아이디어는 여당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상태다.

특별법을 제정하려면 여야 간에 미리 손 볼 곳이 많다. 대표적인 임기제 공무원으로 방송통신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등이 있다. 이들의 임기는 3년이다. 대통령 임기와 어긋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방통위와 권익위는 위원장 교체를 두고 갈등이 진행 중이다.

특별법의 목적이 국정철학 공유에 있다면 임기제 공무원의 범위에 한국전력 사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등 공공기관장을 포함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알박기 논란과 신·구 정권 충돌을 막을 수 있다. 특별법에 공공기관장 임기와 자격 등을 담으면 불공정 채용을 둘러싼 시비도 줄일 수 있다.

공기업 내부에서 잔뼈가 굵은 유능한 직원이 톱 매니지먼트에 오르는 게 상책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공기업의 목적, 지분 구조 등을 고려할 때 집권세력의 간섭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우상호 아이디어’를 가다듬는 게 고질적인 소모전을 줄이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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