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인하…라면업계, 정부 압력 버틸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20 16:32

"밀 수입 제분사 가격 가만두고 라면 제조사만 압박"



제분사 인하 움직임 없어…"빵도 밀가루 제품" 항변



전분·물류비·인건비 제반비용 상승 고려 안한 처사



2008년 압박 때도 2년뒤 인하…당장 내리기 힘들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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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 모습


[에너지경제신문 서예온 기자] 라면업계가 정부의 라면 가격인하 공개 압박에 당혹감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부가 국제 밀 가격 하락을 근거로 국내 라면 가격의 인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데다 여론도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라면업체들은 일단 가격인하 검토라는 반응을 내놓고 여론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당장 빠른 시일 내에 라면업체들이 가격인하 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재정기획부 장관의 라면가격 인하 발언 직후 라면업체들은 개별적으로 가격 인하를 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양식품이 가격인하 검토에 들어간 것을 비롯해 1∼2위 업체 농심과 오뚜기도 가격 인하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8일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라면값이 지난해 9~10월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공개적으로 가격인하를 던져놓고도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며 정부는 살짝 발을 빼는 꼼수를 보였다.

추 부총리의 발언대로 현재 국제 밀 가격은 떨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 5월 국제 밀(SRW) 가격은 톤(t)당 228달러로, 지난해 5월 419달러보다 45.6% 하락했다.

지난해 해외 밀 가격이 사상 최고로 오르는 시기에 국내 라면업체들은 잇달아 라면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농심은 지난해 9월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팔도와 오뚜기도 각각 9.8%, 11% 인상했다. 삼양식품 역시 평균 9.7% 올리며 인상 움직임에 합류했다.

더욱이 가격인상 이후 올해 1분기에 라면업체들의 실적 호조로 연결되자 가격 조정 압력이 세지기 시작했다. 농심은 1분기 영업이익 343억원으로 전년 동기 보다 85.8%나 증가했다. 오뚜기도 전년동기 대비 10.7% 증가한 영업이익 653억원을 올렸다.

그럼에도 라면업계는 정부의 가격인하 요구에 난처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국제 밀의 국내 도입 시스템을 들고 있다. 즉, 국제 밀 가격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국내 라면업체들은 직접 밀을 수입하지 않고 국내 제분사를 통해 구매하고 있다.

현재 제분사들의 밀가루 공급 가격은 인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 제조사 대한제분 관계자는 가격인하 가능성을 묻자 "별도로 드릴 말 없다"며 구체적인 답을 회피했다.

밀가루 외에도 라면에 들어가는 전분 가격과 물류비, 인건비 등 여러 제반 비용이 오른 점도 라면업체들의 가격인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라면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 밀 가격이 떨어졌다지만 국내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있어 현 상황에서 라면 가격 인하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에 밀가루가 포함돼 있지만 전분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있지 않냐. 물류비와 인건비도 많이 오른 상황이서 국제 밀 가격 인하만 반영해 당장 가격인하를 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한켠에서는 정부가 유독 라면업체만 겨냥해 가격인하 압박을 가한 처사에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라면업계 다른 관계자는 "단순히 밀가루 가격이 인하됐다고 해서 제품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면 빵도 똑같은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 관계자는 "라면은 가격을 올려 90~100원 안팎인 것과 커피처럼 3000~4000원에서 10% 올리면 300~400원 오르는 것과 어느 것이 가격인하의 물가안정 효과가 커겠냐"고 반문하며 "사실 라면은 (가격을 올려도) 빵 하나 가격도 안되지도 않는다"며 정부의 일방적 압박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식품업계는 정부의 라면 가격인하 요구로 라면업체들이 검토에 들어갔지만 실제로 가격인하가 당장 이른 시간 내 결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2008년 8월에도 정부가 국제유가와 밀가루 가격이 하락하자 연계된 생필품의 가격 인하를 적극 유도한 바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라면업계는 즉시 가격인하를 단행하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2년이 지난 2010년 제분사들이 국제 원맥 시세와 환율이 안정되면서 밀가루 공급가격을 내리자 마지못해 라면 가격을 내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pr902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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