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전 전황 싫은 쪽 이젠 ‘글쎄’…반란이 남긴 흔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6.28 21:01
UKRAINE-CRISIS/RUSSIA-PUTIN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스푸트니크/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러시아 용병단 반란 사태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시간의 편’에 대한 시각을 뒤바꾸고 있다.

그간 일각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철권통치’ 밑 러시아가 자국 국민 뿐 아니라 우방 뜻까지 계속 모아야 하는 우크라이나 보다는 장기전에 유리할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했다.

그러나 용병단 반란을 계기로 오히려 러시아가 장기전 전략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용병단 반란으로 보면 러시아 독재자까지도 군사적 부진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이 기본적으로 전쟁 부진과 러시아군 수뇌부 무능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다.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군사 참모와 야전 사령관들을 계속 헐뜯어왔다.

푸틴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전장으로까지 확산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바그너그룹의 정규군 통폐합을 지시하자 결국 반란이 터졌다.

반란군은 특히 1000km 가까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해 크렘린궁이 있는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군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에게 충분한 ‘숙고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반란 수괴를 벨라루스 망명 형식으로 풀어주고 모스크바 방위를 강화하는 선에서 사태를 서둘러 미봉했다.

이런 무장봉기는 전쟁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차단할 수 있다는 푸틴 정권 자신감과 배치되는 사태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그간 푸틴 대통령은 국민 여론에 정권이 좌우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서방 약점으로 보고 ‘버티면 결국 이긴다’는 장기전 전략을 택했다.

프랑스 싱크탱크 전략연구재단의 프랑수아 에이스부르 고문도 WSJ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내년 미국 대선 뒤에 결판을 볼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서방에서는 그간 평화 협상론이 끊임없이 제기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대반격이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지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이어졌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원 축소를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서방 지원을 주도하는 미국의 여론, 특히 정권교체 가능성은 푸틴 대통령에게 중대 기로이자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에이스부르 고문은 "(반란이 일어난) 지난 24일 가닥이 잡혔다"며 "이제는 서방보다 먼저 러시아가 전쟁을 접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진단했다.

현재 각종 구설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한차례 패배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상대로 ‘복수전’에 성공할 수 있을 지부터 미지수인 상황이다. 미국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연방의회 역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초당적 합의를 견지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에는 용병단 반란과 같은 악재가 수면 위아래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이 관측된다.

WSJ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전쟁이 지속되면 누구일지는 몰라도 다른 엘리트가 들고일어날 수 있다"며 "러시아군 지도부 내홍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러시아 부대원들의 사기 저하 문제가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완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되는 우크라이나 역시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런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샤 글레니 오스트리아 인문과학연구소 소장은 최근 더타임스 기고에서 교착 지속이 판단될 경우 우크라이나가 점령지에서 러시아 영향력을 최대한 약화하고 푸틴 정권을 흔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봤다.

군사 이론가들은 적국 혼란을 가중하고 내전 촉발을 유도하는 전략 목표를 ‘재앙적 성공’(catastrophic success)이라고 부른다.

글레니 소장은 남부에서 크림반도를 노리고 진행되는 우크라이나 대반격에서 이런 책략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당장 푸틴 대통령은 여론전 전면에 나서 ‘미봉’에 그쳤던 수습에 거듭 박차를 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연설에 이어 이날까지 이틀 연이어 반란 사태에 대해 연설했다.

그러나 이런 수습이 ‘먹힐’ 지는 미지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대통령 발언이 반란을 멈추기로 합의한 프리고진이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할 때 주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셀카까지 촬영한 모습과 상반된다고 꼬집었다.

푸틴 대통령이 단결을 강조했으나 러시아 곳곳에서 균열이 보인다는 것이다.

푸틴 정권을 비판해온 정치평론가 보리스 카가르리츠키도 "정권에 대한 지지가 너무 적어서 놀라웠다. 군대, 경찰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은 그저 지켜봤다"며 "아무도 정부 청사로 달려가 지지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프리고진에 대한 지지는 그의 정치적 견해 때문이 아니라 정부 시스템에 대항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꽤 많은 사람이 그것(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기뻐했다"고 강조했다.


hg3to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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