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銀, 홍콩빌딩 편입 사모펀드 투자자에 자율조정
원금 일부 지급, 운용사 대상 구상권 청구 등 검토
은행 판매 獨트리아논 오피스 임의매각 불가피
부동산 침체 장기화...은행 투자자 추가 손실 가능성
▲해외 부동산 펀드 손실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 고객들이 2800억원의 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글로벌 고금리 기조에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과거 고객들에게 해외 부동산 펀드를 판매했던 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외 시장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재택이 일상화되면서 오피스 빌딩의 공실이 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과거 저금리 기조 속 인기를 끌었던 부동산 펀드가 손실 위험에 노출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부동산 가격 하락이 계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판매한 부동산 펀드 역시 리스크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현재 ‘시몬느대체투자전문사모투자신탁제12호’ 상품에 대해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고 보고, 지난달 말부터 해당 펀드 손실 발생 사실과 자율조정 등을 안내하고 있다.
해당 펀드는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을 편입한 상품으로, 2019년 6월 미래에셋이 2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우리은행을 비롯한 국내 기관들에게 셀다운(재매각) 했다. 펀드 운용은 멀티에셋자산운용이 맡았다.
미래에셋이 해당 펀드를 셀 다운할 당시만 해도 10개월 만기에 5~6%의 높은 금리를 지급하는 상품으로 인기를 모았지만, 이후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보증을 선 홍콩 억만장자가 파산하고, 빌딩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 이미 선순위 대출자인 싱가포르투자청(GIC)와 도이치방크는 권리를 행사해 빌딩을 매각하고 원금을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은행은 자산 30억원 이상의 초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해당 펀드를 판매했다. 판매 규모만 760억원대다. 그러나 해당 펀드에 가입한 초고액 자산가들의 손실이 불가피해진 만큼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사적 화해 수단 중 하나로 자율조정을 실시할 방침이다. 투자자들과 사적 화해를 통해 투자원금의 일부를 지급하는 등 피해보상 절차를 진행하고, 향후 운용사를 대상으로 구상권 청구와 중순위 채권 추심도 검토할 방침이다.
부동산 펀드 손실로 고객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곳은 우리은행뿐만이 아니다. 해외 부동산 펀드는 저금리 시기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앞다퉈 미국, 유럽 등 랜드 마크 지역의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했고,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증권사, 시중은행에 재매각해 영업점을 통해 판매했다. 그러나 글로벌 긴축 기조, 경기 침체, 기업들의 인력 감축, 오피스 빌딩 공실률 상승, 건물 가격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서 펀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고 손실 위험도 커지고 있다.
실제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는 독일 트리아논 오피스 건물의 주요 임차인인 데카방크가 임대차계약 연장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비상이 걸렸다.
데카방크는 펀드 관련 자산 임대료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연장 옵션 미행사로 2024년 6월 말 임대차계약이 만료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임차인 보조금, 임대차 마케팅 비용 등 신규임차인 유치비용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트리아논 오피스의 임의 매각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해당 펀드 규모는 공모펀드 1865억원, 사모펀드 1835억원 등 총 3700억원이다. 시중은행, 지방은행을 비롯한 18개 금융사가 해당 펀드를 판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부동산 펀드 투자자들 역시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분야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앞다퉈 해외부동산에 투자했지만, 현재는 고금리 기조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충격이 몰아쳤다"며 "특히나 해외는 대체로 공실률이 부동산 가격에 즉각 반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대출 한도가 줄어들고, 대출 한도 축소분 만큼 기관들의 자기자본 투자 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추가적인 펀드 피해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은행들의 상품은 대체로 유사한 구조가 많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펀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저금리 기조 속에 기관투자자들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동산에 투자하고, 해당 펀드를 은행을 비롯한 영업점에서 고객들에게 판매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어떠한 오피스라도 안전하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며 "아직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금융사들은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