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뭐가 문제고 뭘 바꿔야 하나…"결국 요금 상승 억제가 관건"
재생에너지 입찰시장 가격 경쟁 유도…현물시장 가격 하락 시도
"서비스 다양화 기대 민간 진출 확대 필요하나 요금 상승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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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위치한 태양광발전시설의 모습. 연합뉴스 |
■ 글 싣는 순서
<上> 재생에너지發 총성 없는 전쟁…‘유니콘기업’ 꿈꾸는 스타트업
<中> 불꽃 튀는 화석연료 발전시장…공공·민간회사 각축전 본격화
<下> 뭐가 문제고 뭘 바꿔야 하나…"결국 요금 상승 억제가 관건"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이원희 기자] 전력시장에 민간기업들의 활발한 진출로 빅뱅(대폭발)이 일어나면 발전 사업자와 전기 소비자의 선택 폭이 한층 넓어지게 된다.
하지만 발전 사업자의 경우 사업위험이 커질 수 있고 전기 소비자로선 전기요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결국 전력시장에 대한 민간 진출 확대의 최대 과제로 사업 위험을 줄여주고 전기요금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꼽힌다.
민간 기업으로선 오랫동안 공기업 독점체제였던 전력시장에 참여해 제한된 경쟁환경에서 수익사업을 펼쳐야 해 적지 않은 사업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또 민간기업이 전력시장에 들어오게 되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
민간기업이 전력시장에 진출하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전력생산으로 유연한 전환, 비용대비 효율적인 전력생산, 빠른 발전설비 보급 등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어서다.
민간기업들은 발전설비용량 기준으로 하면 전력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을 정도로 상당수 참여 중이다.
민간기업의 가장 큰 사업 목적은 투자 대비 이익을 최대로 올리는 것이다.
민간기업은 한국전력공사, 발전공기업들 같은 공공기관과 달리 사업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손해를 보면 곧바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
민간기업들의 넘치는 이익과 정부의 손해배상액 지급액은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할 몫이다.
전문가들은 전력시장의 민간 개방과 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했지만 전기요금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력당국도 민간기업의 전력시장 진출 확대에 맞춰 전력가격 합리화를 위해 제도를 손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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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현물시장 가격 변화 추이(2021.06~2023.6) (단위: 원/REC) 자료= 신재생에너지원스톱통합포털 |
전력거래소는 입찰시장에서 발전사업자 간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을 제주도에서 올해 말 시범운영해보고 이후 오는 2025년에는 육지에까지 정식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기존 전력시장에서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발전만 하면 한전에서 전력도매가격(SMP)를 반영해 전력거래소를 통해 무조건 구매해줬다.
다만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발전할 때 추가로 발급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의 경우 별도의 거래시장을 통해 현물시장 혹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고정가격계약 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의 전력판매가격은 SMP와 REC 가격의 합으로 이뤄진다.
최근 REC 가격이 상승하면서 REC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REC 가격은 지난달 평균 1REC당 7만2938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평균 5만4492원보다 33.9%(1만8446원)나 올랐다.
REC는 대규모 발전사들이 의무비율만큼 구매하는 데 구매비용은 전기요금의 일부인 기후환경요금으로 충당한다.
REC 가격이 오를수록 그만큼 기후환경요금도 더 오르는 구조다.
기후환경요금 중 REC 비용은 킬로와트시(kWh)당 7.7원으로 4인 가족 기준으로 약 2400원을 매달 내야 한다.
RPS 제도를 운영 중인 한국에너지공단은 REC 가격을 안정화(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연구용역 결과는 이르면 올해 말 나올 예정이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REC 현물시장 안정화 방안) 연구용역을 수행 중으로 올해 말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SMP가 RPS 고정가격계약 낙찰가격보다 더 올라도 고정가격계약 대로만 거래해야 한다.
지금은 RPS 고정가격계약으로 20년 동안 전력판매가격을 1메가와트시(MWh)당 150원에 팔기로 정했는데 어느 날 SMP가 만약 200원이 되면 200원에 팔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RPS 고정가격계약을 체결하는 사업자는 1MWh당 150원에 전력을 팔기로 했다면 SMP가 200원이 되더라도 150원에 전력을 팔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력시장의 가격변동으로 인한 사업자들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가격이 어떨 때 높아지고 낮아지고 하면 당연히 사업 리스크가 커진다"며 "시장을 활성화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인 배터리를 활용하면서 시장에서 사업자들의 리스크를 줄일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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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 참여로 지어진 강릉안인화력발전소의 전경. |
대기업들은 발전시장에서는 2001년 이후 40.1%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판매나 송전 등 다른 분야에는 여전히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대기업 단체와 일부 정치인들이 심심치 않게 한전의 전력산업 독점 문제를 해소해 판매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난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한전의 판매 독점 구조는 여전히 굳건하다.
독점이었다가 과점으로 바뀐 통신 시장처럼 경쟁을 통한 다양한 서비스의 등장과 소비자 편익 확대라는 이점이 있지만 시장이 개방될 경우 결국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이 번번이 변화를 가로막아 왔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의 경우 전력유통 등에도 경쟁체제가 도입돼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데, 한전이 독점하는 국내 시장에서는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며 "집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이들의 경우 기본요금은 저렴하면서 사용량에 매겨지는 전기요금이 비싼 요금제를 선호할 수 있고, 상시 전력을 가동하는 24시간 점포에서는 기본요금이 비싼 반면 사용량에 따른 전기요금은 저렴한 요금제를 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 같은 수요들을 충족시킬 만한 요금제가 전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수년간 국제 에너지가격 급등으로 한전의 적자가 심각한 상황이라 개방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석탄과 국제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연료비는 큰 폭으로 인상됐지만, 판매요금은 사실상 정부의 가격통제에 따라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실을 보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결국 기업과 국민들이 전기요금을 그만큼 덜 지불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민생과 물가 안정을 위해 전기 소매요금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민간이 본격 판매경쟁에 참여하게 된다면 통신요금과 마찬가지로 전기요금의 도매·소매요금 결정권도 민간에 넘겨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요금이 형성되게 된다.
전력분야 한 전문가는 "현 정부가 ‘시장 원리에 기반한 전력시장, 전기요금 체계 확립’을 천명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전력산업은 공공 서비스로 인식되고 있어 민영화와 요금 인상이 단행된다면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경련에서 전력시장 개방의 사례로 설명한 유럽연합(EU) 국가 및 일본은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주요 선진국 중 독일은 2021년과 2022년 사이 43%, 영국은 33%, 스페인은 68%, 프랑스는 24%, 일본은 12%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 석탄발전 단가 보전 등 못해 발생한 민간기업 불이익 피해 관련 소송 움직임도
요금 현실화 지연은 민간발전업계의 정산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들 업계는 최근 3,4분기 정산조정계수 의결 전 법원에 금지 가처분 접수를 했다가 소송을 취하했다. 한전은 한전대로 적자가 심하고 발전업계는 업계대로 정부의 송전망 확충 지연 등으로 투자 대비 합당한 정산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급전순위가 높은 발전소가 우선적으로 가동된다. 현재 동해안 지역에서는 공기업인 한국남부발전의 삼척그린파워 2기가 우선 가동되고 있다. 발전기 특성상 워낙 연료가 저렴해 항상 급전순위 최상위에 위치한다. 다음 급전순위를 두고 민간발전사인 GS동해전력 2기와 강릉에코파워 2기 중 급전순위에 따라 가동이 결정되고 있다. 당초 전력수급기본계획대로라면 6기 모두 문제 없이 가동돼야 하지만 당초 지난해까지 완공예정이던 송전선로가 확충되지 않아 발전소 가동 제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인해 일부 석탄화력발전소들은 발전소를 다 지어놓고 가동도 온전히 못하는 것은 물론 발전대금 정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점 전력 판매권한을 가진 한전은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력공급사업자인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도매로 사들여 소비자에 판매한다. 한전의 전력 구입 단가는 도매가인 SMP를 시장 거래가격 기준으로 하되 이에 대한 할증률 성격의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해 산정된다. 이 계수에 따라 발전사들의 손익이 결정된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거래소가 각 사별로 받은 열량 단가 예측치를 가지고 정산조정계수를 판단한다. 그런데 개별 발전기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계수를 산정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우리 발전사의 경우 작년에만 1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봤다. 올해도 송전제약으로 40% 밖에 가동을 못하고 있다. 정부의 전력수급계획과 송전망 확충 약속을 믿고 사업에 참여했는데 손실을 강요당하고 있다. 전력당국이 이같은 사정을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원활한 전력수급을 위해 정부와 발전기업 간 신뢰가 중요하다. 어떠한 사정으로 약속 미이행에 따른 송전제약 등이 발생할 경우 총괄 원가 보상이라는 기본 원칙을 적용해 정산조정계수를 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정부 측 관계자는 "개별 발전기들의 특성을 반영하고 싶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을 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한전도 적자가 심하고 전반적으로 업계가 어렵다 보니 이런 문제가 자꾸 불거지는 것 같다. 최대한 법적 분쟁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wonhee454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