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너지경제신문 강근주 기자] 오는 8월15일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파주시가 광복 역사를 돌아보고 독립운동가 헌신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뜻 깊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광탄 태극기 마을, 한국 근현대사박물관, 독립운동가 장준하 공원, 석인 정태진 기념관 등 역사 여행지 4곳을 추천했다.
◆ 파주 3.1만세운동 발상지, 광탄 태극기마을
광탄면 발랑리는 파주지역 3.1만세운동 발상지로 1919년 3월 발랑리 주민이 모여 계획하고 시작한 만세운동이 파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우산 심상각, 석천 김웅권 선생 등 19인 동지회가 주축이 된 광탄면 주민은 3월27일 봉일천 장날에 맞춰 광탄면사무소에 집결했다. 조리읍사무소까지 만세 시위를 한 광탄면 주민은 조리-월롱 등 인근에서 모여든 5000여명과 합세해 조리읍사무소와 주재소를 에워싸며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2012년 파주시는 발랑리 마을을 태극기 마을로 선정하고, 2016년 8월15일 파주독립광탄공원을 조성했다. 발랑리 태극기 마을은 전체 가구에서 365일 태극기를 게양하고 2021년에는 애국선열 9인을 기리는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 100년 전 대한민국 모습,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한국근현대사박물관(kmhm.or.kr)은 일본이 통치권을 빼앗아간 1910년부터 40년대, 뼈아픈 6.25 전쟁이 있던 195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격동의 시기 발자취와 한국 근현대생활사 유물자료(정치, 경제, 문화, 생활, 교육, 스포츠, 오락 등) 7만여 점이 전시돼 있는 한국 최초 근현대사 테마박물관이다.
지하1층 풍물관은 저잣거리(상가가 죽 늘어선 거리) 42개 세트가 주제별로 구성 전시돼 있다. 초가집, 기와집, 생활풍경, 달동네 살림살이 풍경, 옛날우체국, 전파사, 의상실, 양장점 등 다수 주제별 실사 세트 구성으로 교육적 학습효과가 높다.
지상1~2층 문화관은 20개 세트가 주제별로 구성됐다. 문방구, 헌책방, 만화방, 교실 풍경, 레코드 가게, 중화요리점, 교복점, 분식점, 군 내무반, 새마을 회관, 안내소(옛날 물건 백화점), 아날로그 가전품, 소형삼륜차(삼발이), 자전거를 개조한 오토바이 등을 섬세하게 재현해 근현대 문화 변천을 체험할 수 있다.
지상3층에는 한국 정치 100년사를 보고 독립운동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역사관과 옛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물건이 가득한 추억의 소장품관이 운영된다.
◆ 돌베개처럼 굳은 독립의지, 장준하공원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는 일제 점령기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그리고 민주화 운동가였던 장준하 선생을 기리는 장준하공원이 있다. 공원 위쪽에는 그의 사상의 상징적 요소이자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돌베개‘처럼 생긴 묘소가 있다.
자서전 ’돌베개‘는 장준하 선생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임정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기까지 2년간(1944~1945) 기록을 담고 있다. 선생은 평북 의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으나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 2500km를 걸어서 임정에 있는 중경까지 갔다.
장준하 선생은 광복 이후 잡지 ’사상계‘를 창간해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치다가 1975년 8월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했다. 파주시는 장준하 선생의 독립운동, 지식인운동 등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는 역사의 산 교육장을 조성하기 위해 2012년 추모공원을 조성했으며 2018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주도, 석인 정태진기념관
파주시 중앙도서관 옆에 위치한 정태진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정태진의 생가다. 1903년 7월25일 이곳 금능동에서 나고 자란 정태진은 연희전문학교를 마치고 1927년 미국유학을 떠나 철학, 교육학을 공부했다.
1931년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함흥 영생여고보에 교사로 부임해 11년간 근무했는데, 바로 이 영생여고보가 조선어학회 사건 배경이 됐다. 1942년 9월 이 학교 학생의 일기장에서 발견된 정태진의 한글 교육이 사건 단초가 됐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정태진이 속해 있던 조선어학회를 말살하려 했다.
정태진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함흥 감옥에서 복역하다 1945년 7월1일 광복되기 직전에 만기로 출감, 서울로 돌아왔다. 광복 후에는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전념하면서 틈틈이 대학에서 국어학 강의를 했고, 1949년 한글학회 이사로 피선됐다.
조선말 큰사전이 셋째 권까지 출간될 즈음인 1950년 6.25전쟁 발발로 피난생활을 하게 된 선생은 서울수복 직후 서울로 올라와 홀로 사전 편찬작업에 매진했지만 마지막 인쇄 작업만을 남긴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kkjoo0912@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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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독립광탄공원. 사진제공=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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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독립광탄공원. 사진제공=파주시 |
광탄면 발랑리는 파주지역 3.1만세운동 발상지로 1919년 3월 발랑리 주민이 모여 계획하고 시작한 만세운동이 파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우산 심상각, 석천 김웅권 선생 등 19인 동지회가 주축이 된 광탄면 주민은 3월27일 봉일천 장날에 맞춰 광탄면사무소에 집결했다. 조리읍사무소까지 만세 시위를 한 광탄면 주민은 조리-월롱 등 인근에서 모여든 5000여명과 합세해 조리읍사무소와 주재소를 에워싸며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2012년 파주시는 발랑리 마을을 태극기 마을로 선정하고, 2016년 8월15일 파주독립광탄공원을 조성했다. 발랑리 태극기 마을은 전체 가구에서 365일 태극기를 게양하고 2021년에는 애국선열 9인을 기리는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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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역사관 입구. 사진제공=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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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 독립운동 사료전. 사진제공=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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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안내책자. 사진제공=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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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안내책자. 사진제공=파주시 |
한국근현대사박물관(kmhm.or.kr)은 일본이 통치권을 빼앗아간 1910년부터 40년대, 뼈아픈 6.25 전쟁이 있던 195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격동의 시기 발자취와 한국 근현대생활사 유물자료(정치, 경제, 문화, 생활, 교육, 스포츠, 오락 등) 7만여 점이 전시돼 있는 한국 최초 근현대사 테마박물관이다.
지하1층 풍물관은 저잣거리(상가가 죽 늘어선 거리) 42개 세트가 주제별로 구성 전시돼 있다. 초가집, 기와집, 생활풍경, 달동네 살림살이 풍경, 옛날우체국, 전파사, 의상실, 양장점 등 다수 주제별 실사 세트 구성으로 교육적 학습효과가 높다.
지상1~2층 문화관은 20개 세트가 주제별로 구성됐다. 문방구, 헌책방, 만화방, 교실 풍경, 레코드 가게, 중화요리점, 교복점, 분식점, 군 내무반, 새마을 회관, 안내소(옛날 물건 백화점), 아날로그 가전품, 소형삼륜차(삼발이), 자전거를 개조한 오토바이 등을 섬세하게 재현해 근현대 문화 변천을 체험할 수 있다.
지상3층에는 한국 정치 100년사를 보고 독립운동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역사관과 옛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물건이 가득한 추억의 소장품관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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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준하공원. 사진제공=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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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장준하공원. 사진제공=파주시 |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는 일제 점령기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그리고 민주화 운동가였던 장준하 선생을 기리는 장준하공원이 있다. 공원 위쪽에는 그의 사상의 상징적 요소이자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돌베개‘처럼 생긴 묘소가 있다.
자서전 ’돌베개‘는 장준하 선생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임정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기까지 2년간(1944~1945) 기록을 담고 있다. 선생은 평북 의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으나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 2500km를 걸어서 임정에 있는 중경까지 갔다.
장준하 선생은 광복 이후 잡지 ’사상계‘를 창간해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치다가 1975년 8월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사했다. 파주시는 장준하 선생의 독립운동, 지식인운동 등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는 역사의 산 교육장을 조성하기 위해 2012년 추모공원을 조성했으며 2018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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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석인 정태진기념관. 사진제공=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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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석인 정태진기념관. 사진제공=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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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석인 정태진기념관 입구. 사진제공=파주시 |
파주시 중앙도서관 옆에 위치한 정태진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정태진의 생가다. 1903년 7월25일 이곳 금능동에서 나고 자란 정태진은 연희전문학교를 마치고 1927년 미국유학을 떠나 철학, 교육학을 공부했다.
1931년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함흥 영생여고보에 교사로 부임해 11년간 근무했는데, 바로 이 영생여고보가 조선어학회 사건 배경이 됐다. 1942년 9월 이 학교 학생의 일기장에서 발견된 정태진의 한글 교육이 사건 단초가 됐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정태진이 속해 있던 조선어학회를 말살하려 했다.
정태진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함흥 감옥에서 복역하다 1945년 7월1일 광복되기 직전에 만기로 출감, 서울로 돌아왔다. 광복 후에는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전념하면서 틈틈이 대학에서 국어학 강의를 했고, 1949년 한글학회 이사로 피선됐다.
조선말 큰사전이 셋째 권까지 출간될 즈음인 1950년 6.25전쟁 발발로 피난생활을 하게 된 선생은 서울수복 직후 서울로 올라와 홀로 사전 편찬작업에 매진했지만 마지막 인쇄 작업만을 남긴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kkjoo0912@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