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미래 산업을 위한 미국의 전력망 구축 시사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8.20 06:14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박성우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우리 몸 속에는 전기가 흐른다. 전기 신호가 심장을 뛰게 하고 근육을 움직이며 뇌에 자극을 전달한다. 이를 생체전기(bioelectricity)라고 한다. 사람의 몸은 가만히 있을 때 약 100W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워쇼스키 자매는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이를 영화 매트릭스에 구현했다. 전쟁 중에 인간이 기계의 에너지원인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지 못하게 방해하자 기계들은 인간을 붙잡아 생체전기를 뽑아내서 사용한다.

의료분야에서는 생체전기를 질병 진단과 치료에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제세동기는 심장이 멈췄을 때 고압전류를 아주 짧은 시간 심장에 통하게 해서 정상적인 맥박으로 회복시킨다. 우울증치료제인 프로작은 몸속에서 액체 형태의 전기로 바꿔서 사람의 기분을 전환한다. 흔히 인바디라고 부르는 생체측정 장치는 생체전기 저항분석법을 이용해 체지방량을 예측한다. 다리와 팔에 약한 전류를 통과시키는데 근육은 전기가 잘 통하고, 지방은 잘 통하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다. 체중에 비해 흐르는 전기가 많으면 근육이 많은 것으로, 체중에 비해 흐르는 전기가 적으면 지방이 적은 것으로 추정한다.

전기는 인체 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최종 사용부문의 전기화, 에너지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핵심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내연기관차, 가스보일러와 같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술을 전기차나 히트펌프와 같은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기술로 대체하고 있다. 이는 저탄소 에너지원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남에 따라 전력망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전력망의 용량과 유연성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미국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미국은 크게 서부·동부·텍사스주 등 3개 전력망으로 구성돼 있다. 송전 용량 제약으로 이들 전력망 간에는 전력 송전이 거의 없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에 주요 대도시가 있어 인구와 산업이 집중됐다. 특히 수력발전소는 동부와 서부, 화력발전소는 동부와 중부에 몰려 있어 기존 전력 시스템에서는 장거리 송전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이 증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풍력발전은 중부, 태양광발전은 남부의 자원량이 우수하다. 중부와 남부의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동부와 서부로 보내야 하는데 현재 송전망 용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발전용량은 1250GW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전력망 접속 대기중인 용량은 2000GW 이상이다. 태양광 947GW, 풍력 300GW, 저장장치 670GW가 접속 대기 중이다. 전력망에 접속하려면 평균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늘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제정으로 향후에는 접속대기 기간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늘어나는 청정에너지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2035년까지 총 송전 용량을 현재보다 1~3배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2026년에 건설을 시작한다고 해도 매년 2253~1만6254km의 송전선을 새로 깔아야 하는 셈이다.

사정은 만만치 않다. SunZia 송전망 건설 사업은 남부 뉴멕시코 풍력단지에서 서부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약 800km 길이의 500kV 2개, 송전 용량은 4.5GW의 선로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2006년 사업을 시작했지만 지역주민, 환경단체, 지자체, 군부대 등과의 장기간의 협의 과정을 거치며 올해 하반기에 건설을 시작해 2025년에 준공 예정이다. 무려 20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이에 미국 에너지부(DOE)는 2022년 1월 ‘더 나은 전력망 구축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고 같은해 11월에 미국 전력망 현대화와 확장에 13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말 미국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신규 발전원의 계통연계 간소화 규정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규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송전망 제공자는 개별 사업 단위가 아닌 여러 사업들을 묶어 전력망 접속 검토를 해야 한다. 사업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것에 비해 동시에 여러 사업을 검토할 수 있으므로 접속 대기중인 사업들을 처리하는데 효율적이고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접속을 희망하는 사업자는 보증금을 납부해야 하며, 토지 허가 또는 건축 허가를 획득해야 한다. 접속 신청을 철회하면 철회 위약금을 부과한다. 투기적이고 실행이 어려운 접속 신청을 억제하고, 송전망 제공자가 상업운전에 도달할 가능성이 큰 접속 신청에 대한 검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이다.

둘째, 송전망 제공자는 정해진 기한 내에 접속 검토를 마쳐야 하며,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또 표준화되고 투명한 검토 절차를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접속 신청 처리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

셋째, 단일 접속 지점 하에 있는 지역에 복수의 발전설비를 설치할 때 접속 신청을 한 번만 해도 되도록 허용한다. 또한 접속 신청자는 커다란 변동사항이 아니라면 새로운 접속 신청 없이 발전설비를 추가할 수 있다. 발전설비와 저장장치를 동시에 운용하는 사업을 위한 조항이다. 이 규정은 태양광발전과 같은 인버터 기반 자원에 대한 모델링 및 성능 표준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은 2013년 4748억kWh에서 10년 뒤인 2022년에는 5479억kWh로 약 15% 증가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투자 확대와 전기차 확산 등으로 2036년에는 7032억kWh로 2022년에 비해 약 2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 몸에 전기가 잘 흘러야 건강하듯이, 우리 산업에도 전기가 잘 공급될 수 있도록 전력망 관련 규제와 절차를 개선하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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