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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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기조를 이어가자니 금융권의 건전성이 우려되고 돈줄을 옥죄자니 내수위축이 염려다. 가계부채 관리를 둘러싼 딜레마다. 대출정책은 정부와 실수요자 간에 동상이몽이 계속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책모기지론을 포함한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 기준 1068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늘었다. 잔액 기준으로 6월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고, 7월 가계대출 증가 폭은 2021년 9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컸다. 특히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완만하게 하락한 반면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누증을 방지하기 위한 다각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비율이 계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4분기 기준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인 105.0%를 기록했다. 과거 초저금리 기조 속에 무리하게 빚을 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영끌, 빚투가 유행처럼 번진데다 코로나19라는 특수성 속에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생계형 대출까지 확대된 영향이다. 이 과정에서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하기 위한 규제가 조기에 도입되지 못한 부분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정부의 근본 기조는 확고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문제는 빚을 내서 자산을 불리려는 실수요자들의 의지가 정부의 의지보다 더 높다는데 있다. 최근 정부가 도입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두고 정부 스스로 가계부채 증가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가계부채 총량이 더 불어나서는 안된다는 정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규제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며 부동산 대출규제의 단계적 정상화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 출범후 첫 가계대출 관리방안임과 동시에 금리상승이 진행중인 상황이었던 만큼 대출수요자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당시 발표안에는 취약차주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이자부담을 줄이고자 50년 만기 정책모기지를 도입, 보금자리론·적격대출 최장 만기를 40년에서 50년으로 확대할 계획도 포함됐다. 대출만기를 확대해 소득이 적은 신혼부부들이나 청년층의 대출금액을 늘려주고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복안이었다.
50년 만기 주담대 도입 초기만 해도 정부의 의중은 명확했다. 고금리 시대에 차주들은 금융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고, 당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강조하는 상생금융 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주택금융공사의 50년만기 정책모기지를 시작으로 올해 7월부터는 시중은행은 물론 지방은행과 2금융권인 보험사들까지 잇따라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판매하며 금융당국의 정책방향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쳤고, 금리 고점론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50년 만기 대출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국이 뒤늦게 50년 만기 주담대를 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지목하고, 그 책임을 금융사들에게 돌리면서 50년 만기 주담대도 금융시장에서 종적을 감추게 됐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어느 한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당국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잡히지 않는 것은, 정부와 차주 모두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적게나마 간과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가계부채를 확대하는 것은 현재 소비를 늘려 단기적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것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소비위축 효과가 부채 확대에 따른 소비진작효과보다 커지면서 장기 성장에 부정적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 속 가계대출 부실화에 대한 긴장감은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상황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가계는 적절한 규모의 가계신용 운영을, 정책당국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신중히 살펴 근시안적 결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할 것이다.
mediasong@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