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조삼모사(朝三暮四) 전기요금 정책 안된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9.25 08:22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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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글로벌 에너지시장과 금융시장은 한국 상황을 별도로 배려할 이유가 없다. 유가는 100달러를 넘볼 기세로 치솟고 있고 천연가스는 역대 최저 수준이라 더 이상 내려갈 여력 없이 상승 힘만 잔뜩 축적해놓고 있다. 제롬 파월의 미 연준은 당분간 금리인하가 없으며 연내 추가적인 금리인상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금리 추세는 당분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도 내놨다.

한국 경제를 둘러 싼 상황이 녹록치 않다. 한미간 금리 역전으로 외국자본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고, 여기에 추가한 채권가격 상승으로 자본흐름의 동맥경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요동치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 위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미분양 증가와 함께 건설사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건설사의 부도는 주택공급 위축으로 연결돼 장기적으로 수급불균형을 초래해 집값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 회사채발 구축효과는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든 한계상황을 금융시장에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 억제는 더 이상 한전이나 전력시장만의 이슈로 머무르지 않는다. 작년에 급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40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했는 데도 전기요금을 현실적 수준으로 올릴 수 없어서 한전은 회사채를 이미 대폭 발행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의 발행이 시중 일반 회사채를 외면케하는 이른 바 구축효과를 경험했다.

최근 시중에서 은행채 발행 규모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다. 은행채 순발행액은 지난 8월 약 4조원에서 이달에는 7조원을 넘어섰다. 한전채와 더불어 우량채권인 은행채 순발행 증가는 시장금리를 상승시키고, 이는 가계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의 이자비용 부담증가로 이어진다.

작년 말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정책은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기초했다. 연초에 당정은 2023년 새해 물가 전망을 ‘상고하저’라는 시나리오 아래서 전기요금 인상폭을 제한했다. 하지만 하반기에 오히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있어 한전 부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예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200조원의 한국전력 부채를 최우선순위로 관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거시금융, 통상, 심지어 국민의 노후 밥줄인 연금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한국전력 주식의 6.59%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해 미수금으로 역시 천문학적인 적자를 껴안고 있는 한국가스공사의 부채도 해결돼야 한다.

금융과 부동산, 에너지·전력 시장 간에 이와 같은 연결성 복잡계는 한 부문에서 촉발되는 네거티브 충격이 걷잡을 수 없는 전방위적이자 총체적인 위기로 확대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더 이상 전기요금 인상을 미적거리면서 이미 한계상황에 있는 이들 시장 상황을 추가적으로 악화시키는 오판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하는 정치권이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정부의 고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해결될 수 있을 만큼 우리 경제의 체력이 더 이상 튼튼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억제될 때에 각 가정에서 전기요금은 몇 천 원 절약할 수 있겠지만, 한전채 발 금리상승의 이자비용 부담은 수만 원에서 십 수만 원으로도 증가할 수도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전기요금 인상 관련 소득취약계층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는 선별적인 비용부담 완화 정책을 펴면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재난지원금 등도 선별적으로 집행한 IT 강국인 한국에서 전기요금을 굳이 보편적 복지와 공공요금 규제 수단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정책의 파급효과는 복잡한 연결고리를 타고 승수효과에 의해 훨씬 큰 규모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앞 주머니로 전기요금은 덜 내지만 알게 모르게 뒷주머니로 이자비용을 더 부담하게 하는 ‘조삼모사’의 전기요금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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