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종잡을 수 없는 전력 수요예측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0.19 08:30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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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전력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 8월 7일에는 최대 전력수요가 104.3GW로 2021년 7월27일의 100.7GW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겨울철 사정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2019년 1월 9일 100.8GW를 찍은 후 2021년 12월 27일 103.6GW, 2022년 12월 23일에는 105.6GW를 기록했다. 2022년 겨울 산업통상자원부가 작성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23년 기준 전망치(하계 102.5GW·동계 99.1GW)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135.6GW로 잡은 2036년의 최대 전력수요도 예측치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래 예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력수요를 예측하는 ‘수요전망’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의도적·암의적 조작도 불가능하지 않다.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던 2017년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경우가 그랬다. 당시 2030년의 최대전력 수요 전망을 제7차의 113.2GW에서 100.5GW로 11%나 줄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기준연도인 2017년의 최대 전력수요를 3GW나 줄이고, GDP 성장률을 4.0%에서 3.0%로 낮춰 버린 것이다. 2030년의 GDP성장률도 2.4%에서 1.8%로 낮췄다. 전력 수요전망을 정권의 정책 의지에 따라 고무줄처럼 조정했다는 뜻이다. 의도적인 조작은 은밀하게 진행됐던 국민소득과 부동산 통계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었다.

의도적인 조작이 아니더라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 수요전망의 근간이 되는 국내총생산(GDP)의 합리적인 예측부터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발생하는 불확실성도 심각하다. 전력을 공급해주는 ‘전력 믹스’도 바뀌지만, 수요의 구성도 달라진다. 새로운 대규모 전력수요가 등장하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제10차 기본계획에 반영했던 전기차·데이터센터의 증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전국 15개 지역에 조성하겠다는 ‘국가첨단산업단지’도 엄청난 전력수요를 발생시킨다. 특히 경기 용인에 들어설 삼성전자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는 10GW 이상의 전력을 요구한다. 최근에 운영 허가를 받은 1.4GW 규모의 신한울 2호기 7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SK하이닉스가 2027년부터 가동하겠다는 반도체 생산공장도 만만치 않다.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데이터센터의 급증도 전력수요 전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2008년 99개에 불과했던 데이터센터가 2019년 158개에 이어 올해는 현재 202개로 늘었고 2029년에는 637개로 늘어난다.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이 41GW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현재 전력수요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2020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확보한 데이터센터 전기사용예정통지 1001건 중 67.7%에 해당하는 678건이 실수요가 아닌 허수다. 전기사용을 허가받은 데이터센터의 부지 확보가 짭짤한 투기의 대상이 돼버린 탓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데이터센터 입지의 78%와 전력수요의 75%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송전망 구축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전력수요 전망을 보수적으로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설비 투자를 소홀하게 만들어 재앙적인 전력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전력난이 시작되면 회복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발전소 건설에는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과 막대한 시설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1년 9·15 순환정전으로 확실하게 경험한 일이다. 결국 어느 정도의 낭비를 감수하더라도 발전설비를 충분하게 확보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잉 투자의 피해는 금융비용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탈원전·탈석탄으로 초래된 기록적인 적자·부채의 늪에서 허덕이는 한전의 형편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극단적인 간헐성을 가진 태양광·풍력 설비의 급증에 대한 송전관리 대책도 필요하다. 재생에너지가 없었던 시절에는 100여 곳의 대형 발전사만 관리하면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전력거래소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소규모 영세 발전사가 송전망 관리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 전력시장에 실시간으로 계량되지 않는 PPA(전력구매계약)와 가정용 BTM에 대한 관리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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