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 교수팀, 특정 분자와만 상호작용 하는 초소형 카이랄 채널 제작
암 치료 위한 약물전달, 광학센서, 촉매 등에서 혁신적 기술 발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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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KAIST 화학과 교수 |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왼손을 거울에 비추면 오른손과 정확히 겹친다. 그러나 왼손을 아무리 회전해도 오른손과 같은 모양으로 겹칠 수는 없다. 이처럼 모양은 같지만 아무리 회전해도 서로 겹칠 수 없는 거울상이 존재하는 경우 ‘카이랄성’을 띤다고 한다.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자연계의 많은 물질이 카이랄성을 띤 화합물이다. 즉, 분자식은 같지만 구조나 배치가 달라 아무리 회전해도 겹칠 수 없는 거울상(이성질체)이 존재한다. 또한, 많은 약물 역시 카이랄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카이랄 분자의 두 거울상은 서로 다른 생물학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예컨대, 왼손에 해당하는 하나의 이성질체는 의학적으로 유익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오른손에 해당하는 다른 이성질체는 독성을 가져올 수 있다. 일례로, 카이랄 화합물 중 하나인 나프록센의 한 이성질체는 관절염 등에 효과가 있는 반면, 다른 이성질체는 간 독성 유발한다
암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은 특정 암세포에만 작용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카이랄성을 활용하면 특정한 형태 약물을 선택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카이랄성 원리를 이용해 암 치료를 위한 약물 전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한 분자과학의 새로운 기술이 KAIST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KAIST(총장 이광형)는 화학과 이희승 교수 연구팀이 원자 수준의 정밀도로 극미세 나선형 카이랄 통로를 만드는 방법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 통로는 인간 머리카락 직경의 약 5만분의 1에 해당하며, 그 특별한 나선 형태 때문에 특정 분자와만 세밀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이 기술은 약물의 효율적인 개발부터 첨단 소재 설계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응용을 가능하게 한다.
연구팀은 자연의 카이랄성 원리에 착안, 짧은 비천연 펩타이드(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 조각)와 구리 클러스터(다발)를 이용해 규칙적인 나선형 채널을 가진 금속-펩타이드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합성했다. 특히, 연구팀은 카이랄 채널의 세밀한 구조 조절로 이 금속-펩타이드 네트워크가 특정 카이랄성 분자에만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단결정 분석을 통해 이러한 복잡한 상호작용 원리를 명확히 규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기존에 알려진 금속-유기 프레임워크와는 달리, 폴대머(비천연 펩타이드) 기반의 방법을 도입해 3차원 구조 내에서 분자와의 상호작용을 더욱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분자 공학과 첨단 소재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전망된다.
원자 단위로 정의된 카이랄 채널의 제작은 다양한 분야, 특히 카이랄 촉매, 카이랄 광학센서, 암 질환 치료를 위한 약물 전달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적인 기술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연구를 주도한 이희승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막 채널 단백질 또는 효소의 활성부위에서 분자의 기질 특이적 상호작용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됐다"며 "복잡한 미세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기능기를 원하는 3차원 위치에 모듈식 치환을 통해 도입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한 의의가 있다" 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약물 전달, 고분자 및 나노기술에 응용이 가능하다"며 "특정 카이랄 반응에 반응하는 인공효소 개발을 위한 핵심 기술로 간주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KAIST 화학과 김재욱 석박사통합과정이 제1저자로 주도한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선도연구센터사업(멀티스케일 카이랄 구조체 연구센터, CMCA)의 지원으로 진행됐으며, 화학소재 분야 최정상급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9월 18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kch0054@ekn.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