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민주 둘 다 피 본 美 하원의장 ‘막장 드라마’, 승자는 결국 트럼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0.26 09:07
USA-TRUMP/NEW YORK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초유의 미국 하원의장 공백 사태 및 의회 파행이 22일 만에 해소된 가운데,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 ‘치킨 게임’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돌아간 모양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25일(현지시간) 본회의를 열어 다수당인 공화당 소속 4선인 마이크 존슨 의원을 미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으로 선출했다.

존슨 의장은 이날 하원의장 선출투표에서 재석 의원 429명 가운데 공화당 소속 의원 220명 전원의 지지를 얻어 과반(217표) 득표에 성공했다.

재석한 민주당 의원 209명 전원은 하킴 제프리스 자당 원내대표에게 투표했다.

이에 지난 3일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해임 이후 3주 넘게 지속된 하원의장 공석으로 인한 하원 마비사태가 끝났다.

존슨 의장은 하원 진출 이후 이렇다 할 보직을 역임한 경력이 없어 하원의장으로서의 정치적 중량감은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당내에선 대표적인 ‘친트럼프 의원’ 중 한 명으로 꼽혀, 소수 강경파의 ‘몽니’에 힙 입어 하원의장의 지위를 얻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존슨 의원이 하원의장으로 선출됐다"며 "그는 2020년 대선 결과 인준에 반대했고 낙태와 우크라이나 원조에도 반대표를 던진 인물이며, 성소수자 규제를 지지한다"고 보도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중 일부 이슬람 국가 출신자들에 대한 이민 금지 행정 명령에도 지지를 밝힌 바 있다.

하원의장 선출 전 트럼프 전 대통령도 소셜미디어에 "나는 이기는 후보 마이크 존슨과 함께 가길 강력하게 제안한다"는 글을 올려 지지를 표명했다. 선출 직후에는 "그는 위대한 의장이 될 것"이라고 축하 글을 남겼다.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 선봉대 격인 극소수 강경파들이 지난 3일 연방정부 셧다운을 막기 위해 임시예산안을 처리한 케빈 매카시 전 의장을 축출한 이후, 새 하원의장까지 가져간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밀하게 나뉜 하원 권력 균형추 때문이다.

현재 하원 의석은 공화당 221명, 민주당 212명으로 9석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공화당 의원 5명만 ‘반기’를 들어도 민주당의 협조가 없으면 의안을 처리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를 이용한 공화당 강경파 20여명은 공화당 내분을 노린 민주당 동조에 힘입어 메카시 전 의장 뿐 아니라 첫 번째 후임 의장 후보로 선출된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까지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프리덤 코커스 공동설립자로 초강경파의 일원인 짐 조던 법사위원장을 두 번째 후보로 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는 당내 중도파 등 20여명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선출을 저지, 반격을 시도했다. 이후 공화당은 세번째 후보로 톰 에머 원내수석부대표를 선출했으나, 강경파 의원들이 또다시 물러서지 않아 후보 선출 4시간 만에 사퇴했다.

대 우크라이나·이스라엘 군사 지원, 2024회계연도 예산안 처리가 시급한 가운데 하원 마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형국이 ‘치킨게임’으로 흐른 것이다.

결국 당내 중도파 등은 결집한 초강경파 20여 명을 이기지 못한 채 하원 본회의에서 강경파가 미는 존슨 후보에 찬성표를 몰아줬다.

이에 따라 이들 배후에 자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막후 정치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한번 과시하게 됐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원’들도 이번 사태의 ‘승자’로 꼽힌다.

이들은 친트럼프 후보인 짐 조던 법사위원장이 2번째 의장 후보로 선출됐다가 낙마하자 그를 지지하지 않은 공화당 의원들에게 위협적인 메시지를 보내 물의를 빚었다. 그 끝에는 결국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이 가까운 의원을 하원의장으로 만들어냈다.

2년마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쳐 선거를 치러야 하는 공화당 소속 하원 의원들로서는 고도로 결집된 ‘마가 공화당원’의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공화당내 다수 의원들과 여당이자 하원 소수당인 민주당은 자동적으로 이번 사태의 ‘패자’로 꼽히게 됐다.

특히 민주당은 공화당 소수에 동조해 내분을 키웠지만, 결과적으로 메카시 전 의장보다 강경한 보수파이자, 트럼프 전 대통령에 가까운 존슨 의장을 협상 파트너로 맞게 됐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인 셈이다.

매카시 전 의장은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하루 앞뒀던 지난달 30일 임시예산안을 발의함으로써 여야 합의 하에 셧다운이라는 파국을 막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존슨 신임 의장이 대폭적인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마가 공화당원들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려 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국정 의제들은 벽에 부딪힐 수 있다.

이미 한시가 급한 바이든 행정부는 신임 하원의장 선출 소식 직후 곧바로 정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요청하고 나섰다.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다양한 현안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추가 예산 약 560억달러(약 75조원)를 의회에 긴급히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존슨 의장 선출을 축하하면서 "우리는 국가 안보 필요에 대응하고 22일 내로 셧다운(정부 업무 일시 정지)을 피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중요한 현안에서 정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가능한 한 접점을 찾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g3to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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