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폐 배터리냐, 사용 후 배터리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1.16 07:58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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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일본 에도시대, 에도(江戶)에 ‘인분(人糞)’ 거래시장이 있었다. 에도지역의 인구 급증으로 도시의 농산물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인근지역의 농산물 생산을 위한 인분 퇴비의 수요가 덩달아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다. 인분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그동안 기존 인분 처리업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수거·처리하는 보통의 폐기물에 지나지 않았던 인분, 특히 고품질 인분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뛰어들었다. 급기야 인분에도 품질에 따라 등급이 부여되고 가격을 차등화하며 사실상 ‘상품화’ 됐다. 요즘에도 ‘상품’과 ‘폐기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전기차 배터리다. 이와 관련해 최근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지난 14일 배터리 제조, 전기차 제작, 배터리 재활용, 유통·물류 분야에 이르는 24개 민간업체·기관이 참여한 협의체인 ‘배터리 얼라이언스’가 업계의견을 담아 ‘사용후 배터리 통합관리체계’ 업계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이 안에는 향후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이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시장을 조성, 육성하기 위해, 민간 중심의 사용후 배터리 거래 체계 구축, 배터리 전주기 통합이력관리 시스템 구축, 공정한 거래 시장 조성을 위한 시장거래 규칙 마련, 재생원료 사용의무제 도입, 사용후 배터리 산업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 등에 대한 정책제언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률안까지 담았다.

헌데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업계안에는 이목을 사로잡는 2가지 대목이 있다. 첫 번째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의 정의 부분으로 업계는 사용후 배터리를 ‘폐기물’이 아닌 ‘상품’으로서 ‘전기차에서 분리돼 재제조·재사용과 함께 재활용 대상이 되는 배터리’까지로 새롭게 정의하자고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안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됐다는 점이다. 그 동안 해당 정책을 주도해온 환경부가 아니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부는 인식이 다르다. 환경부는 기본적으로 전기차에 탑재됐다가 폐차 등으로 철거되는 배터리를 ‘폐기물’로 인식해 ‘폐배터리’로 지칭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존 폐기물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폐기물로 간주, 전처리 후 일정 공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희귀 유가금속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환경부는 자원순환법 개정하면서 전기차 배터리가 다시 전기차 재사용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재제조할 경우에만 순환자원으로 인정, 폐기물 규제를 면제해주는 대신 ‘재활용’에 대해서는 ‘지정폐기물’로 지정, 규제·관리하겠다고 천명했다. 배터리가 순환자원이 아닌 지정폐기물로 분류되면 밀폐·보관사항에 대해 안전규제를 받고, 어디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받으며, 사업허가나 입지규제, 보관, 운송, 거래 등 전반에 걸쳐 보다 강화된 규제가 적용된다. 그러니 환경부가 재활용 배터리에 대해서는 ‘보다 강한 그립(Grip)감을 유지한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은 전기차에서 탈착된 배터리가 재제조·재사용하든, 재활용하든 사실상 동일 생산라인에서 동일한 원료를 다루는 공정이라 위험 물질 함유량에 차이가 없다. 그리고 전기차에서 탈착한 배터리가 잔존성능이 70~80%이면서 경제성이 높은 광물을 포함한 경우 재제조하거나 재사용된 이후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closed loop)’ 속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야 건강하게 성장하는 순환경제 기반 산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재제조·재사용처럼 배터리(특히 셀·Cell)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활용하면 ‘상품’으로서의 ‘사용후 배터리’가 되지만, 배터리를 파쇄하면 폐기물인 ‘폐배터리’가 된다. 결국 재활용 배터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법적으로 아직 육성해야 할 시장이 존재하는 ‘상품’이 아닌 그냥 위험한 폐기물로 취급받고 있다.

물론 최근 전기차의 보급 추세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확장성은 크다. 이에 따라 향후 전기차에서 쏟아져 나올 사용후 배터리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해 자원 순환도하고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신시장을 열려는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또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전기차 탈착후 배터리 정책 관련해 산업육성 전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규제를 전담하는 환경부가 벽을 허물어야 한다. 당장 따로국밥인 ‘사용후 배터리’·‘폐배터리’라는 용어부터 자원순환에 초점을 맞춰 ‘사용후 배터리’로 통일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상위 조직으로 범부처가 참여하는 총리직속의 ‘컨트롤타워’ 설치를 검토해 볼만하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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