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에너지 복지, 정부가 직접 챙기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1.21 07:53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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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한국가스공사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216억원(24%)이나 줄었다. 관행상 기타 자산으로 분류하지만 사실상 순손실일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민수용(가정용) ‘미수금’도 무려 12조5202억원으로 늘었다. 그런데 동절기 취약계층에 대한 도시가스 요금 지원을 확대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발생한 비용이 무려 2022억원이나 된다. 9만6000원이던 도시가스 요금 지원액을 59만2000원으로 한꺼번에 무려 6배나 올린 탓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았던 취약계층에게 도시가스 요금을 지원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권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도시가스는 취사와 난방을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필수 연료이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치명적인 연탄가스를 걱정해야 하고, 도시환경을 오염시키고, 수급도 원활하지 못하고, 불편한 연탄을 쓰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취약계층 복지 지원에 필요한 적지 않은 비용을 에너지 공기업인 가스공사가 떠안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가스공사의 모든 수입은 온전하게 도시가스 요금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취약계층의 도시가스 요금 지원은 일반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재주는 정상적인 도시가스 요금을 납부하는 일반 소비자가 넘고, 생색은 엉뚱하게 가스공사가 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물가와 국민 부담을 핑계로 도시가스 요금을 동결하면 사정이 엉뚱하게 달라진다. 정부는 국민 경제를 위해 물가를 잡았다고 으쓱하고, 일반 국민은 어려운 이웃을 지켜주었다고 안심하는 황당한 착시가 발생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 사회의 생존에 꼭 필요한 곳간이 텅 비어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취약계층 지원이 고스란히 가스공사의 부실로 누적될 수 밖에 없고, 오히려 누적된 부실을 정리하는 일에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어리석은 일이다.

훗날 경제가 좋아지게 되면 도시가스 요금을 충분히 올려서 ‘미수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지혜롭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은 비정상이다. 가스공사가 떠안을 이유가 없는 복지 비용과 정책 실패에 의한 적자를 미수금이라는 허울 속에 감춰두는 꼼수는 하루빨리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에너지 복지의 부담을 떠안은 것은 가스공사만이 아니다. 45조원의 누적 적자에 무너지고 있는 한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취약계층을 위한 전기요금 지원을 모두 정부가 아니라 한전이 떠안고 있다. 물론 전기요금 지원에 투입되는 비용은 고스란히 한전의 부실로 이어진다. 전기요금 지원 대상도 다양하다. 기초수급과 차상위 계층은 물론이고 장애인과 유공자도 포함된다. 심지어 대가족과 3자녀 이상 출산 가구도 한전이 부담하는 전기요금 지원 대상이다. 전기를 공급해주는 한전이 소비자의 재정 상태까지 헤아려야 할 이유가 없다. 태양광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현재의 한전은 국민이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기업이다. 그런 한전에게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통째로 맡겨버리는 일도 내키지 않는다.

취약계층에 대한 전기요금 지원이 전기요금 체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적자의 늪에 빠져버린 한전이 손쉬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만 매달리게 된 것도 그 결과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기업주가 낸다는 생각은 우리의 온전한 착각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100% 상품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소비자가 주머니에서 직접 내는 가정용 요금에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무리한 인상은 기업과 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돼 소비자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에게 취약계층의 에너지 복지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중차대한 국가적 책무다.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식량이나 보건의료만큼이나 국민 생활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취약계층을 지켜주기 위해 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을 동결하거나 깎아주는 꼼수 정책은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에너지 비용은 반드시 정부가 직접 해결하고 감당해야 한다. 에너지 복지를 에너지 공기업에 떠넘겨 부실을 키우는 일은 꼼수이고 비정상이다. 물론 정부의 복지 비용도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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