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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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
현지 투어 상품을 신청해 치앙마이에서 약간 떨어진 국립공원 트레킹 후 도착한 소수민족 마을에서는 여행객에게 커피를 한잔씩 제공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 국왕의 배려로 기존에 재배하고 있던 양귀비 대신 새로운 생계 수단으로 커피를 키우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이제 법적 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떳떳하게 생계를 영위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들이 내온 커피 향이 더 감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태국 및 라오스 북부, 미얀마 동부 샨주 산악지대는 한때 세계 헤로인 생산의 중심지로 ‘황금의 삼각지대’로 불렸다. 역사적으로 오랜 양귀비 재배지인 데다 정치적인 이유로 여러 군벌이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한 지역이라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했다. 과거 이 지역 농민들에게 실질적 지배자인 군벌의 압력 뿐만 아니라 다른 작물보다 몇 배나 수익성이 높은 양귀비 재배가 일반적이었던 이유다.
최근에는 이곳 상황도 바뀌어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자연의 영향을 받는 농산물인 양귀비가 아니라 ‘필로폰’으로도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이 주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인공적으로 합성되는 메스암페타민은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질만 있으면 생산량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고, 생산량이 늘어나면 그에 따라 단위 생산 비용도 하락하기 때문에 마약 사업에 더 매력적인 것이다. 이에 반해 농민들은 더 이상 양귀비를 재배해도 판매할 곳이 줄어들어 버렸는데, 이처럼 공급자 측면에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국내에선 10대들이 다니는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를 나눠준 사건이 발생했다. 메스암페타민 성분이 든 음료수를 기억력과 집중력에 좋다며 학생들에게 나눠준 것인데 마약이 학생들을 상대로 한 피싱 범죄에 사용됐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국내에서 다른 범죄에 사용될 정도로 마약이 쉽게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다크웹과 가상화폐를 이용해 속칭 ‘던지기’ 수법으로 수요자들이 마약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SNS를 통해서도 마약이 거래되고 있고, 마약을 판매한다는 광고가 기재된 명함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배포되기도 했다.
공급자 측면의 환경 변화로 인해 기존에 일본과 함께 메스암페타민의 주된 소비 시장이었던 우리나라에 저렴한 가격의 마약이 대량으로 공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늘어난 마약 생산량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기존 유통망에 대규모로 풀린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신종 마약까지 유통되고 있다.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신종 마약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저렴해진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정부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세우면서 국경에서의 검사 강화, 마약밀수 특별대책 추진단을 운영해 밀수단속을 전담하도록 했다. 또 의료용 마약류 관리체계를 개편해 마약류 처방제도 개선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더불어 마약류 중독에 대한 치료와 재활 제도를 확대하되, 영리 목적의 마약류 매매나 거래 시 처벌을 강화했다. 임시 마약류 지정을 늘리는 등 신종 마약에 대한 대응도 강화한다.
이제라도 정부가 마약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한 것은 다행이다. 시장 변화에 따라 저렴한 마약이 한번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고정된 시장이 생기면 이들을 대상으로 마약이 지속해서 공급되고, 마약 구매 대금을 마련하기 위한 범죄도 덩달아 증가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마약 청정국이란 미몽에서 벗어나 기존 중독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및 재활과 신규 중독자 유입 차단을 통해 숨겨진 마약 시장을 해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