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지주사 기로] 이사회에 분할 안건 없었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2.13 17:48

12월 이사회서 인적분할 결의안 통과돼야만

교보생명 내년 하반기 금융지주사 출범 가능



대법원 무죄, 내년 ICC 2차 결론...어피너티 승기 무게

교보생명 "하반기 출범은 목표일뿐, 과거와 분위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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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교보생명이 이달 5일 정기이사회에서 금융지주사 출범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인적분할 안건을 부의하지 않으면서 금융지주사 출범이 당초 계획인 내년 하반기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금융지주사 설립을 위해서는 어피너티 컨소시엄(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BPEA EQT(구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을 비롯한 재무적 투자자(FI)들의 동의가 선행돼야 하는데, 어피너티 입장에서는 내년 국제상업회의소(ICC) 2차 중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FI 내부에서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오랜 기간 풋옵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돌연 금융지주사라는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 강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 지주사 안건 논의 못해...교보생명·어피너티 입장차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이달 5일 정기이사회를 개최했다. 신창재 회장을 비롯한 사외이사진이 모여 내년도 사업계획과 연말 인사, 조직개편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인적분할 등 지주사 설립 안건은 부의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이 올해 2월 공언한 내년 하반기 지주사 출범은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지주사 설립을 위해서는 인적분할 이사회 결의, 주주총회 특별결의, 금융위원회 금융지주사 인가 승인, 지주사 설립 등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중 주총 특별결의와 당국 인가 등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이번 정기이사회에서 인적분할 결의안이 통과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이 부의되지 않은 것은 지주사 전환을 두고 교보생명과 FI 간의 입장 차가 명확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주총 특별결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주총에 참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교보생명 최대주주인 신 회장 지분율은 33.78%이고, 친인척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을 합해도 지분율은 36.37%다. 2대 주주인 어피너티 컨소시엄(지분율 24%)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주총 문턱을 넘기 어렵다. 교보생명 한 투자자는 "어피너티가 현재 지주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고 있고, 6월께 ICC 2차 결과가 나온 직후 지주사 출범을 개시한다고 해도 관련 절차를 고려할 때 내년 하반기 지주사 출범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법원 무죄, 내년 ICC 2차 결론...어피너티 ‘사실상 승기’ 무게


특히 어피너티는 최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만큼 이르면 내년 6∼7월께 결론이 나오는 ICC 2차 중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FI 내부에서는 어피너티가 신 회장과의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대법원 무죄 판결로 어피너티가 안진회계법인과 함께 교보생명의 가치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가 없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2021년 9월 ICC 1차 중재에서 해당 중재의 책임이 신 회장에 있는 만큼 패소 당사자로서 어피너티의 법률비용 가운데 절반과 중재비용을 모두 부담하라고 결정한 점도 어피너티가 사실상 이겼다는 주장에 힘을 더한다. 다만 2021년 9월 1차 중재에서는 신 회장과 투자자 간에 체결한 풋옵션 조항은 물론 투자자들의 풋옵션 행사 역시 유효하다면서도 신 회장이 평가기관 선임 및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피너티가 제시한 가격에 매수할 의무는 없다는 애매한 결론이 나왔다.

이에 어피너티는 작년 2월 2차 중재를 신청하고, 신 회장에 평가기관을 선정해 교보생명의 공정시장가격(FMV)에 관한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어피너티는 후속절차에 따라 산출되는 최종 공정시장가격을 풋 옵션 가격으로 신 회장에게 지급을 청구할 계획이다.

FI 관계자는 "만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어피너티가 유죄를 받았을 경우 신 회장은 2차 중재에서 애초에 풋옵션 가격이 부당하게 산정됐음을 강하게 주장했을 것"이라며 "1차 중재에서 신 회장에 패소 당사자로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면 우리가 승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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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교보생명 FI인 어피너티 컨소시엄,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임직원들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 교보생명 "내년 하반기 지주사 출범은 목표일 뿐...과거와 분위기 달라"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어피너티 입장에서는 2차 중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에 동의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 측은 "내년 하반기 출범은 데드라인이 아닌 목표시기"라며 "과거 양사가 대립각을 세우던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금융지주사 설립이 결국엔 FI의 액시트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생명보험업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주사 전환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신성장 동력 발굴 등으로 기업가치가 오르게 되면 FI 입장에서는 현재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FI 내부에서는 "그런 거짓말에 다시는 속고 싶지 않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주사 설립은 신 회장이 풋옵션 계약 이행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FI 관계자는 "회사의 순자산이 어피너티가 투자할 당시 5조원에서 13조원으로 성장했다"며 "이에 합당한 가치를 평가해서 주주 간 계약에 정한 바에 따라 매수하라는 풋옵션을 행사했는데, 이걸 이행하지 않고 왜 자꾸 동문서답을 하냐"라고 강조했다. 이어 "FI들은 지주사 전환에 관심 없고, 신 회장 개인의 이행 책임을 회사에 떠넘기는 배임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이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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