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지주사 기로] 여전한 입장차...FI, '플랜B' 만지작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2.13 17:50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으로 중장기 성장 동력 확보"

기업가치 제고시 FI도 보다 높은 가격에 액시트 가능



교보생명 투자만 10여년째...투자자들, 답답한 상황 계속

리티게이션 펀드, 제3자 매각 등 액시트 시나리오 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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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이라는 청사진을 두고 교보생명과 재무적 투자자(FI)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면 기업가치가 높아져 궁극적으로 FI들의 투자금 회수에도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교보생명 FI들은 이미 교보생명에 투자한 지 10여년이 지난 만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풋옵션(주식을 특정 가격에 되팔 권리)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FI들은 교보생명의 액시트가 지연됨에 따라 FI가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을 제3투자자들에게 매각하거나,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PEF)인 리티게이션(litigation)펀드에 넘기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 지주사 출범 첫 관문은 어피너티 동의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이르면 내년 하반기 금융지주사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교보생명이 당초 내놓은 청사진대로 내년 하반기 지주사 출범을 위해서는 이달 초 정기이사회에서 인적분할 결의 안건이 통과돼야 하는데, 분할 안건이 부의조차 되지 않으면서 지주사 출범이 다소 지연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교보생명은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생명보험업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지주사 전환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신성장 동력 발굴 등으로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FI 입장에서도 지금보다 높은 가격에 액시트가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지난 4월 대체자산운용사 파빌리온자산운용 지분 100%를 인수한 것도 지주사 설립의 일환이었다.

문제는 지주사 출범 전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FI를 설득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데 있다. 교보생명이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2대 주주인 어피너티 컨소시엄(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BPEA EQT(구 베어링 PEA), 싱가포르투자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신창재 회장과 어피너티가 체결한 계약에 따르면 지주사 설립 과정에서 신 회장이 보유한 교보생명 주식을 분할하고, 지주사 법인에 현물 출자할 때도 어피너티의 동의가 필요하다.

교보생명 측은 "예전처럼 어피너티와 교보생명이 무리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은 아니다"며 "교보생명의 기업가치 제고와 FI들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 물밑에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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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주주현황.


◇ FI "지주사 전환과 풋옵션 이행은 별개"

그러나 FI 내부에서는 지주사 전환과 풋옵션 이행은 별개의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특히나 신 회장이 풋옵션 이행을 거부하면서도 지주사 전환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든 것은 풋옵션 분쟁의 본질에서 벗어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교보생명 지분 9.79%를 보유 중인 코세어캐피탈이 신 회장과 풋옵션이 포함된 주주간 계약을 체결한 것은 2007년 10월이었다. 같은 시기 어펄마캐피탈(지분 5.33%)도 특수목적법인(SPC)인 KLI INVESTORS LLC를 설립해 풋옵션이 포함된 주주간 계약을 체결했으며,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2012년 9월 유사한 내용의 주주간 계약을 맺었다.

당시 어피너티가 맺은 계약은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풋옵션을 행사해 자신들이 매입한 지분을 신 회장에 매도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는 바꿔 말해 어피너티가 투자할 당시에는 3년 내 교보생명에 대한 액시트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의미다. 그러나 신 회장 측에서 "주주간 계약 자체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독소조항이 담겼다"며 지금까지 풋옵션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FI 한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지주사 출범은 전혀 관심이 없다"며 "당초 계약대로 3년 안에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풋옵션을 매수하겠다는 계약서 내용을 이행하면 되는데, 지주사 전환은 대체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FI 액시트 시나리오 셋...리티게이션펀드 거론


신 회장이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FI 내부에서는 제3자 매각과 같은 다른 수단을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이 실제 투자금 회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IPO까지 이뤄져야 하는데,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상장 승인을 하지 않는다.

FI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방안 가운데 현재까지 가장 리스크가 적은 방식은 리티게이션펀드에 매각하는 방법이다. 사모펀드 유형 중 하나인 리티게이션펀드는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개념으로, 쉽게 말해 소위 소송 및 법적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다. 법조 전문가들로 구성된 리티게이션펀드는 법적 분쟁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을 인수하고, 소송에서 승소하면 차익을 실현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FI 입장에서는 신 회장과 끝나지 않을 진흙탕 싸움을 이어가는 것보다 리티게이션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다. 반대로 리티게이션펀드에 FI 지분이 넘어갈 경우 신 회장과 교보생명은 장기간 법적 리스크에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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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두고 교보생명과 재무적 투자자(FI)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FI 지분을 리티게이션이 아닌 다른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제3자 매각은 리티게이션펀드보다 고려할 요소가 많다는 분석이다. FI들이 제3투자자에게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포함해 계약상 지위를 이전하는 동시에 교보생명 측의 협조도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제3투자자가 FI와 교보생명이 현재 진행 중인 법적 절차를 모두 포기한다고 해도, 교보생명 측에서 제3투자자에게 IPO 시기, 배당을 포함한 주주환원책 등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제3투자자 입장에서는 굳이 교보생명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다.

최후의 카드는 FI들이 규합해 지분을 매각하고, 이를 인수한 회사가 신 회장과 표 대결을 벌여 경영권을 빼앗는 방법도 있다. 9월 말 현재 신 회장(33.78%)과 특수관계인을 합한 교보생명 지분율은 36.37%다. 과거 교보생명과 풋옵션 계약을 체결한 어피너티 컨소시엄(24%)과 어펄마캐피탈(5.33%)을 비롯해 다른 투자자들 지분까지 잠재적 원매자에게 매각한다면, 신 회장과의 표 대결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금융사를 포함한 국내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생보사 빅3인 교보생명을 인수해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클수밖에 없다. 신 회장과 교보생명의 여론전은 물론 이사진 물갈이, 조직 장악까지 대내외적으로 험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FI 관계자는 "교보생명이 FI의 지분을 자사주 형태로 취득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 경우 최대주주인 신 회장의 경영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가 개입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교보생명이 지난해 IPO가 불발된 후 올해 2월 지주사 전환을 선언한 것은 최대주주이자 지배주주인 신 회장과 FI 간 분쟁에 회사가 움직이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으면서도 자사주 취득에 대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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