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부회장직 폐쇄적 운영, 외부후보 차단"
부회장직 운영 KB금융·하나금융 부담, 폐지할까
"후계자 양성은 직위보다 직무, 다른 방법 있어"
외부후보에 힘싣는 모범안 "특정인 밀어줄 수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송두리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부회장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며 금융지주사들의 부회장직 운영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지주 중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가 부회장직을 운영하고 있는데, 당장 연말 조직개편에서 부회장직을 폐지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모범관행에서 금융지주와 은행이 앞으로 차기 CEO(최고경영자)를 뽑을 때 외부 후보가 불리하지 않도록 비상근 직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인재 풀이 넓지 않은 상황에서 소수의 외부 인물들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의견과, 이들이 금융사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의문을 내놓는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전날 "금융지주 부회장직이 특정 회장이 셀프 연임하는 것보다 훨씬 진일보한 것은 맞는다"면서도 "그 제도가 폐쇄적으로 운영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 발탁과 외부 후보를 차단하는 부작용도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이 금융지주 부회장직에 대한 장·단점을 모두 언급하면서도 비판적인 시선에 힘을 실은 만큼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부회장직 운영에 대해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융지주 중 KB금융과 하나금융이 부회장직을 운영하고 있는데, 연말 조직개편 부회장직을 폐지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KB금융의 경우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이 후계자 양성을 위해 부회장직을 신설했고, 지난 11월 부회장이었던 양종희 KB금융 회장이 선임되며 당장 2인자 양성이 중요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허인 전 KB금융 부회장과 이동철 전 KB금융 부회장은 양종희 회장 선임에 따라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부회장직이 공석이 된 만큼 이번 연말 인사에서 폐지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김기환 KB손해보험 대표가 새로 부회장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시기상 부회장으로 선임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부회장직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함영주 현 회장의 임기가 2025년 3월까지라 내년 말부터는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이에 후계자 양성이 중요한 상황인데, 이 원장의 발언에 따라 부회장직 존폐 여부를 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하나금융은 현재 박성호 부회장, 강성묵 부회장, 이은형 부회장이 있다.
금융권에서는 부회장직이 능력 있고 검증된 경영진을 발탁해 회사 전반의 경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만큼 후계자 양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단 현재 금융지주사들이 그룹장, 부문장도 운영하고 있는데, 부회장직을 꼭 고수해야만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회장직이 없더라도 경영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후계자 양성이라는 것이 직위보다는 직무에 초점을 두는 게 맞을 것"이라며 "부회장직이 전 계열사와 그룹을 통합할 수 있는 경영 능력을 갖추는 과정인데, 직위에 연연할 필요 없이 직무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와 은행이 내부 후보에 대한 육성프로그램을 운영할 경우 외부 후보자에게도 비상근 직위를 부여해 이사회와 접촉 기회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외부 후보자의 기회를 넓히고 회사 경영 전반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국내 금융지주 외부 후보자에 대한 인재풀이 넓지 않은 상황이라 오히려 특정 인물 발탁에 힘을 더 실어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지주·은행 CEO 후보로 오르는 외부 인물은 KB금융·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은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대부분인데, 이들의 수는 많지 않다. 이 후보들에 비상근직을 부여하면 은행 내부의 경영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최종적으로 회장이 되지 못할 경우 민감한 내용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모범관행에서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보완을 거칠 내용도 있다"며 "추가 논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두고 금융당국은 ‘자율적’이란 입장을 밝혔으나 금융사들은 사실상 전 금융사들이 실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인 DGB금융지주와 내년 말부터 차기 회장을 선정해야 하는 JB금융지주, 하나금융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기에 금융사들이 이를 자율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며 "금융권 분위기를 보고 다각적으로 검토해 내규로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ds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