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상생금융 모두 부적절...국가가 횡재하겠다는 의미" [전문가 진단]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1.02 08:36

횡재 사전적 의미, 뜻밖에 재물을 얻음 또는 그 재물



"은행이 거둔 수익이 모두 횡재인가...표현 신중해야"



은행 이자수익 원인은 정부, 고정형 주담대 유도 오판



전 세계 전례 없어...정책 신뢰도 저하, 주주 이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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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금융사를 향해 요구하고 있는 횡재세, 상생금융에 대해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은행이 거두는 이익은 횡재로 거둔 이익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이 거두는 이익 가운데 무엇이 횡재이고, 무엇이 합리적인 이익인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은 채 정부가 나서서 금융 산업을 ‘횡재산업’이라고 규정한 것과 같다는 분석이다.

특히나 정부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세금을 징수하거나, 자영업자, 소상공인에 이자를 일부 환급해주는 조치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 "은행이 거두는 수익이 다 횡재인가...출발부터 잘못"


국내 주요 전문가들은 ‘횡재’라는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이 거둔 수익이 횡재로 인한 이익인지, 합리적으로 거둔 이익인지에 대한 구분조차 하지 않은 채 은행이 거둔 이자수익을 모두 ‘횡재’라고 표현하는 것은 금융 산업을 ‘산업’으로 존중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행보라는 평가다. 김헌수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횡재에 대한 세금을 걷자는 원론적인 사실에는 당연히 동의한다"며 "복권에 당첨되면 세금을 내듯이 기업들도 어떤 횡재, 즉 우연하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돈을 갑자기 많이 벌었을 때, 이를 횡재라고 한다면 그 횡재에 대한 세금을 거두는 것은 찬성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은행이 1조원을 벌었다면, 이 중 8000억원이 합리적인 이익이고 2000억원이 횡재라는 구분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이 내놓은 횡재세 법안의 정의는 120%를 초과하면 일종의 횡재라고 본다"며 "은행들이 천수답식 경영으로 이익을 거둔 것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이에 대한 세금을 추가로 거두면 되는데, 이를 횡재세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금융 산업을 횡재산업이라고 낙인찍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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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세 논란에 대한 전문가 진단.


◇ 은행권 최대 이자이익...일차적 원인은 ‘정부’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은행권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도입하거나 상생금융을 촉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역대급으로 이자이익을 거둔 배경에는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됐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즉 은행의 이자이익을 비판하기 전에 이자이익을 거둔 원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업황에 따라 기업들이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손실을 기록할 수도 있는데 이걸 인위적으로 특정 업종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며 "은행이 이자이익을 거둔 것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인데, 이 틈을 타서 국가가 횡재세를 거두는 것은 오히려 국가가 횡재하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고금리 기조 속 변동형이 아닌 고정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쪽으로 유도하면서 은행의 이자이익이 불가피하게 증가한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정유사들의 경우 국제유가 흐름에 따라 이익을 거두는 부분이 많은데, 은행에만 횡재세를 거두는 것은 업권 간에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서지용 교수는 "여기에 정부도 (대출)금리가 상승하는데 부추긴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고정형 주담대 금리가 많이 올랐는데, 이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않으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고, 이에 불안을 느낀 변동형 주담대 고객들이 고정형으로 갈아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은행 입장에서는 고정형 주담대의 수요가 많아졌고, 미래 리스크가 커진다는 명분으로 고정형 주담대 금리를 많이 올렸다"며 "이로 인해 은행이 이자수익을 많이 낸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어...국가 정책 신뢰도 저하 불가피

전 세계적으로도 은행권에 횡재세를 부과한 국가는 찾기 어렵다. 이민환 인하대학교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하면서 정유사들이 이익을 얻었을 때, 그 부분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는 나라들이 (유럽 등 일부에) 있기는 하다"며 "그러나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에서 횡재세를 부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은행을 타깃으로 하기 위해 횡재세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사실 횡재세보다는 초과이윤세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했다.

횡재세는 이중과세의 소지가 있는 만큼 다른 국가 사례를 참고해 세금이 아닌 은행권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만일 횡재세를 부과할 경우 은행들은 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이익이 많이 날 때는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서 이익을 줄이고, 이자수익이 적을 때는 충당금을 줄여서 이익을 보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나아가 횡재세, 상생금융과 같은 조치들은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외국인 주주 이탈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4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금융지주) 외국인 지분율은 평균 59.71%로 60%에 육박한다. 서

지용 교수는 "미국 대형은행 웰스파고는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주택금융 비중이 가장 크다. 그래서 웰스파고는 도시에 빈곤층을 대상으로 주택을 공급하거나 건설할 때 재원을 출연해서 지원한다"며 "우리도 그런 쪽으로 은행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끔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민환 교수는 "우리나라 금융지주사는 외국인 지분율이 50% 이상인데,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회사 이익을 세금으로 뺏어가거나 소급 적용하는 조치에 대해 분명 의문을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ys106@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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