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논란에 대한 단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1.11 08:10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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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50인 미만 사업장(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중대재해처벌법 찬성과 반대 측 모두 ‘재해 예방’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있고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찬성 측은 정작 중요한 실효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예정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정교한 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부담스러우니 적용을 유예하자는 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 예방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그저 좋은 법이라는 전제하에 ‘묻지마’ 적용을 하자는 찬성 측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들의 엄벌주의 입장은 가히 종교 수준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북한 등 엄벌주의를 취하고 있는 나라의 산업안전 수준이 형편없는 사실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실효성 있는 예방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

소기업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 발생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이미 처벌되도록 돼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실익이 없다. 소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도 못 지키고 있는 만큼 산업안전보건법이라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이런 상태에서 소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다면 이들 입장에선 옥상옥으로 받아들여져 혼란과 부담만 가중될 뿐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할 건 명약관화하다. 그런데도 찬성 측은 이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무지하거나 솔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찬성론자는 소기업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준수를 적은 비용으로 쉽게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형식적으로 준수할 때만 타당하다. 이 법의 핵심내용인 안전보건관리체계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실질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찬성론자는 이러한 기본적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안전의 형식화를 조장하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소기업에 확대 적용되면 수사에 치우친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관행이 훨씬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가뜩이나 고용노동부의 처벌 일변도 법집행으로 일반경찰과의 차별성이 희미해지고, 산재예방기관이라는 존재이유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더욱 왜소해질 수 있다.

찬성론자의 일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가 조금이나마 줄었다며 이 법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강변한다.(한겨레 2023.12.27 세상읽기). 이런 주장에는 사망사고가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는 기초지식과 종합적 사고가 결여돼 있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산업안전감독관이 약 2.3배, 준정부기관인 안전보건공단 직원이 약 700명, 산재예방 예산이 약 2.3배나 전례 없이 증가했고, 산재예방 선진국보다도 많은 행정인원과 예산을 가지고도 법이 시행된 후에 사망사고 수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법 정책의 여건까지 고려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를 오히려 증가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2023년엔 전 산업에 걸쳐 경기가 침체되고 사망사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공사 착공면적이 거의 반토막이 났다. 객관적으로 사망사고가 크게 줄 만한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중대재해 감소효과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 법의 대응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는데도 중대재해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의 ‘가성비’가 낮은 것은 처벌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예방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깨닫고 일찌감치 이 법의 문제 전반에 대해 대처했어야 했다. 대처할 시간과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 것은 직무태만에 가깝다. 그간 변죽만 울리다가 소기업 적용 문제가 임박한 시점이 돼서야 마지못해 파편적으로 대응하는 식의 모습은 책임정치, 신뢰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안전관계법이 정법(正法)인지 악법인지의 바로미터는 처벌수준이 아니라 재해예방의 실효성이다. 소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여부도 바로 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진영논리, 장삿속과 감성팔이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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