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서 닷새 동안 홍콩ELS 1000억 손실
금소법 도입 후에도 은행 판매 문제 발견
"가입자 상품 판단 어려워…판매 제한 필요"
"판매 금지는 과거 회귀…금융산업 쇠퇴"
▲서울의 한 건물에 설치된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송두리 기자] 5대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서 올해 들어서만 1000억원이 넘는 원금 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종료된 홍콩ELS의 주요 판매사 조사 결과 일부 금융사에서 법규 위반 소지 등 문제가 있었다고 파악하고 현장검사에 들어간 상태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에서 올해 들어 지난 12일까지 1067억원의 원금 손실이 확정됐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8일 첫 손실 확정 후 닷새 만에 1000억원의 원금 손실이 생겼다. 이 기간 만기 도래한 원금은 약 2105억원으로 손실률은 50.7%에 이른다.
홍콩H지수는 현재 5000대에서 횡보하고 있는데, 지금 지수에서 크게 반등하지 않는 한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에서 판매한 고위험 상품에서 50%가 넘는 손실 발생이 확정되자 은행에서 고위험·고난도 상품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또다시 커진다. 앞서 지난 2019년부터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 펀드 사태 등이 터지고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자 은행들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단 은행들 반발로 판매 제한까지는 이뤄지지 않았고,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 시행되며 은행의 상품 판매 절차가 더욱 강화됐다. 비예금성 상품에 가입할 때는 상품 설명 과정이 길어지고, 가입자들이 동의 여부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 등 불완전판매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품 판매 절차를 까다롭게 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홍콩H지수 ELS 판매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올해부터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나는 상품들은 2021년부터 판매된 상품들이다. 지난 7일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은행들은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고위험 ELS 판매 한도를 높이고, 직원의 핵심성과지표(KPI) 배점에 포함하는 등으로 ELS 판매를 늘릴 것을 압박했다. 신탁계약서, 투자자자정보 확인서 등 계약 관련 서류를 보관하지 않은 사례도 확인됐다. 65세 이상 고령투자자 가입 비율은 20%가 넘으며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남겼다. 홍콩H지수 ELS 가입자들은 상품 가입 시 동의 여부를 밝히는 등의 절차와 관련해서도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을 찾는 가입자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지고 있다"며 "직원들의 설명에 따라 상품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과 같은 불완전판매 소지가 발생한다면 은행에서 손실 발생이 있는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은행권에서는 고위험 상품의 판매 제한에는 난색을 표한다. ELS와 같은 고위험 상품은 은행들의 이자이익 확대 통로로 여겨진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금융산업 발전이란 취지에서 ELS와 같은 상품 판매가 가능해졌는데, 과거처럼 예·적금 판매만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라며 "금융산업이 쇠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 8일부터 홍콩H지수 ELS 판매사 12곳을 대상으로 순차적인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고객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 등으로 촉발된 위법사항 등이 확인되면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ds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