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도 ‘안심거래’?…정부, 에스크로 제도 만지작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2.20 14:36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최근 도입 검토 시사

과거 도입 땐 유명무실, 보증금 제3자 예치

일부 전문가들 “전세사기 방지 효과적”

보증금 활용 못하는 집주인들 거부감 여전....“역효과 우려”

에스크로

▲전세사기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에스크로(Escrow·결제대금예치) 카드를 꺼내들지 주목된다. 사진=에너지경제신문 이현주 기자

정부가 전세사기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에스크로(Escrow·안심거래) 제도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어 주목된다. 보증금을 제3자에 예치해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어 전세사기를 확실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섣불리 도입하면 보증금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집 주인들의 반발이 크고, 월세·반전세 급증 등 역효과가 우려돼 정부의 고민이 깊다.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제3자에 예치하는 방안이 어떠냐는 진행자의 질문을 받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에스크로는 상거래 시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인 제삼자가 중개해 금전 혹은 물품을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전자상거래에서 사용된다. 온라인쇼핑몰에서 구매자가 구매대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금융기관은 상품 배송 등 거래 완료 내역을 확인해 결제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앞서 전임인 원희룡 장관은 에스크로 도입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은 바 있었지만 박 장관이 정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다만 국토부도 정식 추진 단계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전세사기에 다양한 대안 중 하나로만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에스크로 제도는 과거에도 추진했다가 유명무실해진 적이 있다. 2000년 개정된 공인중개사법(당시 부동산중개업법)에 따라 개업 공인중개사는 거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거래 계약 이행이 완료될 때까지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금융기관이나 신탁업자, 공제사업자, 개업공인중개사 등에게 예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에스크로를 운용하는 회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 개정 이후 2004년 하나자산신탁(당시 다올부동산신탁) 등에서 부동산 에스크로 상용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후 2016년 9월 우리은행, 퍼스트아메리칸권원보험, 직방이 각각 업무협약을 맺고 부동산 에스크로 제도 부흥을 위한 시범 상품을 출시했지만 취급이 중단됐다.


에스크로 제도는 전세 세입자의 전세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고 집주인의 갭투자 등을 막을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가 서민의 주거 안정에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너무 주거용 부동산 투자에 활용돼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며 “에스크로 제도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국토연구원도 지난해 초 '전세 레버리지(갭투자) 리스크 추정과 정책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에스크로 제도와 관련해 “보증금을 신탁기관에서 관리하므로 임차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현저히 감소할 수 있으며,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협상, 편익 등의 비대칭적인 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효용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보증금을 이미 일종의 무이자 대출로 인식하고 있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적잖은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세를 포기한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반전세, 월세로 대거 돌아서고 결국 서민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 교수는 “에스크로 제도는 굉장히 이상적인 제도"라며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 보증금을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희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