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북한의 ‘적대적 두국가’ 선언과 한국의 대응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2.22 08:35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이강국

▲이강국 전 중국 시안 주재 총영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하면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란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속조치로 조평통,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통일추진기구를 폐지했고,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 남북 민간교류에 관여해 온 단체들을 정리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조국통일 3대 헌장기념탑도 철거했다.




북한의 '통일'과 '동족'을 지우려는 모습은 동독이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서독과 단절해 분단을 고착화하려 했던 시도와 흡사하며, 김일성 정권 이래 견지해 온 '민족자주' 통일노선을 파기하게 셈이 된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두 투 코리아(Two Korea)' 정책을 선언한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체제를 유지하고 흡수 통일을 막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다. 남북관계를 독립된 주권국가 관계로 하는 것이 후계구도의 제도화를 위한 정치체제 전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간 치열한 체제경쟁의 결과, 한국은 선진적 중견국이 되었으나, 북한은 만성적인 경제위기·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한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탈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과 정치적·국제법적으로 완전히 단절해 흡수 통일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다.


둘째, 남한을 향한 핵사용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격적 성격이다. 북한은 2022년 4월 5일 김여정 담화를 통해 전쟁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의 무력화를 위해 핵 사용을 밝힘으로써 사실상 한국이 대상임을 천명했다. 이제 김정은이 '적대적 국가 간 관계' 선언을 통해 한국을 동족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체이자 타자로 정체성을 규정하여 핵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했다.



셋째, 긴장을 조성해 4월 한국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 11월 미 대선 이후 미국과의 담판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넷째, 외교 전략 공간을 확대하려는 심산이다.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북러 밀착, 나아가 북·중·러 북방 3각 연대 가능성 등 현 국제정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 보다 가까워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및 미국과의 수교 교섭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두 개의 국가' 선언은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함을 인정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통일 추진의 당위성이 약화된다.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주변 4강 등에 대한 통일 외교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중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생겨 북핵문제 해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남북한 특수한 관계' 원칙 아래 처리해 온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헌법 개정 문제 대두가 대두되고 이념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북한내 급변사태 발생시 한국의 개입 명분이 없어지게 되는데, 한국은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가로서 북한 문제에 개입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2국 체제'에서는 개입이 어렵다.


한편으로 김정은의 '두 개 국가' 선언은 북한의 형제국이라 할 수 있는 쿠바에게 부담을 덜어줘 한국과의 재수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에 대한 불만으로 외교단 소식을 전할 때 쿠바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북일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내비쳐 한-쿠바 재수교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두 개 국가' 주장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의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선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로서는 역대 남북 합의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위기관리에 주력하되, 주변 4강에 대한 외교 전략을 치밀하게 가다듬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북한 주민들이 대내외 실상을 보다 더 많이 알게해 체제붕괴 등 내부 변화가 생기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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