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진단] 서울시 ‘하도급 없는 공사’ 원칙 ‘공염불’ 우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3.24 11:17

지난해 ‘부실공사 ZERO’ 선언, 하도급=부실공사 지목

원도급 100% 시공 원칙 천명, 최근 주요공정 50% 이상 확대 검토

업계 “직접시공, 건설산업 구조 무시한 처사” 지적

아파트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이미지.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하도급=부실시공'. 서울시가 바라보는 건설산업에 대한 시선이다. 건설산업은 계약과 관리를 담당하는 종합건설업과 직접 공사를 수행하는 전문건설업으로 나뉜다. 그러나 최근 하도급에서 재하도급, 또 재재하도급으로 일감이 넘어가는 다단계 하도급이 부실공사의 한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원도급사가 직접 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시도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건설산업 구조가 '100% 직접 시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의 대책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아 현실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서울시, 원도급 100% 직접시공 원칙 내세워

시는 지난해 11월 '부실공사 ZERO 서울'을 선언하며 원도급사의 '100% 직접시공' 원칙을 발표했다. 낙찰받은 건설사가 하도급을 주지 않고 자기인력과 자재, 장비를 직접 투입해 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오세훈 시장은 공사현장 안전문제가 대부분 하도급에서 발생하고 있어 원도급 시공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시는 2022년 직접시공 의무대상 기준을 확대했었다. 이전에는 원도급 건설사가 3억원 이상~10억원 미만 공사는 30%. 10억원 이상~30억원은 20%, 30억원 이상~70억원 미만은 10%만 직접공사를 하면 인정해줬다. 그러나 시는 이때부터 100억원 미만까지 전부 원도급사가 50% 이상 공사를 직접하도록 의무화했다.



2021년 6월 광주 학동 현장에서 발생한 해체공사 붕괴사고 영향이었다. 당시 철거공사가 하도급에서 재하도급, 재재하도급으로 이어지면서 3.3㎡(1평)당 28만원이었던 공사비가 7분의 1 수준인 약 4만원까지 떨어져 공사 품질이 크게 저하돼 부실사고로 이어져서다.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시공 비율 확대' 추가대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문건설공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철근콘크리트 및 비계공 등 주요 공종은 원도급사가 100% 직접 시공토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공사수행 능력이 가능한 업체가 공사를 수행해야 하고, 불법 하도급을 전면 금지하는 차원에서 '책임시공'이 강조된다"고 밝힌 바 있다. '직접시공'이 '책임시공'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 업계 반발 심화…“건설현장 이해 부족" 지적

그러나 건설업계는 현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예컨대 철근·콘크리트공사는 현실적으로 '원도급사 100% 시공'이 구조상 어렵다. 현재 약 10% 정도만 직접 시공한다. 만약 이를 100%로 높이려면 소규모 청사 공사를 발주할 때 하도급사인 전문건설업체가 직접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철근·콘크리트공사업체들은 영세하고 현장시공이 주 업무다. 입찰 참여에 필요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참여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종합건설업체이 직접 참여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종합건설사들도 현재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소유한 곳이 거의 없다. 그나마 전체 20% 정도의 대형·중견 건설사들만 철근·공사 직접 시공이 가능하다. 이들 만으로는 소규모 공사까지 책임질 순 없다. 가능하다고 해도 기존 중소건설업체는 일감 부족에 폐업 수순을 밟게 될 게 뻔하다.




종합건설업체 A대표는 “원도급사의 안전한 책임시공이란 직접시공을 하든, 우수한 협력사(하도급사)와 협력을 하든 안전하게 공사를 완료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낙찰받은 건설사가 모두 직접 시공하라는 것은 오히려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전문건설업체 B대표는 “직접 공사는 해당 분야의 오랜 전문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필요 장비와 인력을 갖춘 전문건설업이 시공해야 한다"며 “그러나 발주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있으니 종합과 전문이 함께 공동도급하는 상생협력 제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시의 '직접시공' 원칙이 '공염불'이라는 비판에 휩쌓인 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도급 자체가 '부실시공'이라고 단언한 시의 대책이 '보여주기 행정'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 관계자는 “직접시공 원칙은 지속 고수할 예정이지만, 건설업계의 반발이 심해 긴 호흡을 갖고 진행하려 한다"고 해명했다.



김준현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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