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파주시 이동시장실 2년, 시민협치 디딤돌 놓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5.06 22:52

파주=에너지경제신문 강근주기자 “저는 여러분 것입니다. 저를 마음껏 이용해 주십시오." 올해 3월 이동시장실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을 향해 김경일 파주시장이 건넨 말이다. 시장 집무실에서 늘 '부재 중'인 김경일 시장은 '시민이 부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의지로 충만하다. 그동안 시민과 거리를 좁혀가며 '듣는 시장'으로 탈권위적 이미지를 굳혀왔다. 소통은 이제 김경일 시장의 힘이자 파주의 힘이 됐다.




민선8기 파주시가 출범한 직후인 2022년 9월 처음 문을 연 이동시장실이 20개월 만에 82회 운영 실적을 기록하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매주 평균 1회 꼴로 이동시장실이 열렸고, 이를 통해 김경일 시장이 직접 만난 시민 숫자만 누적 2000여명에 달한다. 이동시장실은 '시민중심주의'를 표방한 민선8기 파주시의 대표적인 시민소통창구로 자리매김했다.


김경일 시장은 6일 “정책은 시민을 위한 서비스이며, 정책 성패는 수혜자인 시민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책상에서만 정책이 만들어진다면 시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쏟아지는 모든 민원에 즉각적인 해답을 내놓긴 어렵지만 개선은 미루지 않고 시행하고,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면 서둘러 방안을 마련해 성실하게 해결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파주시 이동시장실 건의사항 추진 현황

▲파주시 이동시장실 건의사항 추진 현황. 사진제공=파주시

◆ '초밀접소통', '수요응답형'으로 진화 거듭

읍면동을 순회하는 월례회의 형식으로 출발했던 이동시장실은 시민과 '직접소통'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읍면동 단체장과 기관장들로 채워지던 행사는 지역주민은 물론 기업인-농업인-문화예술인 등으로 확대되며 소통 체감도가 한껏 높아졌다.


올해는 '동네방네 구석구석 이동시장실'이란 표어를 새로이 내걸었다. 통-리 단위, 동네 주민모임,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규모 그룹 시민과 밀접한 소통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시민 요청에 적극 응답하는 '수요응답형' 이동시장실을 활성화해 시민중심 적극행정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3월21일 파평면 미생물배양소에서 열린 이동시장실은 민통선에서 과수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냉해 발생에 대한 신속한 대처방안을 요청하자 긴급히 이뤄진 현안 간담회였다. 농민 요구 중에는 시장권한 밖이거나 당장 해결할 수 없어 장기적 대책을 요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서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며 시민과 협치가 보다 공고해졌다.


파주시는 과수농가에 이어 청년농업인, 어린이집 보육현장 등 시민 삶터 구석구석에서 분출하는 민의를 경청하고 현장 요구에 걸맞은 실효성 있는 정책 실마리를 찾아나갈 예정이다.




파주시 GTX운정신도시연합회 이동시장실 현장

▲파주시 GTX운정신도시연합회 이동시장실 현장. 사진제공=파주시

◆ “시장 권위 내려놓고 시민 눈높이에서 소통"

김경일 시장은 취임사에서 “시장으로서 권위를 내려놓고 진정으로 시민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파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동시장실을 통해 주민생활과 밀접한 현안을 더욱 꼼꼼하게 챙기고 시민과 함께 고민하는 공론장을 열어 그 다짐을 실천했고, 파주시에선 어느덧 시장과 시민이 얼굴을 마주하고 격의 없이 소통하는 풍경이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이동시장실이 열리면 다양한 민원이 쏟아지고, 지역발전 현안을 놓고 격의 없는 토론이 펼쳐진다. 논의 주제나 수위도 매우 다양하다. 물론 모든 민원과 건의에 대해 즉각적이고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기는 어렵다. 많은 경우 재정상황과 다른 지역과 형평성을 고려해 꼭 필요한 사업을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급기관과 장기간 협의와 조율을 거쳐야만 해결을 볼 수 있는 사안도 적잖다.


지난 20개월 동안 이동시장실을 통해 제기된 시민 건의사항은 총 896건이다. 현재까지 추진 완료된 사업은 이 중 약 25%에 해당하는 224건에 그치지만 나머지 672건 중 473건이 실무부서 사업으로 배정돼 추진되고 있다. 나머지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돼 추진 중단됐거나 장기검토 과제로 넘겨졌다.


민선8기 파주시 '이동시장실' 20개월 만에 82회 운영실적 기록

▲민선8기 파주시 '이동시장실' 20개월 만에 82회 운영실적 기록. 사진제공=파주시

◆ 얽힌 타래 풀어내고 '손톱 밑 가시' 뽑아내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민원도 당사자 입장에선 아프고 성가신 '손톱 밑 가시'와 같다. 대개는 적체된 민원에 묻혀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부서 간 칸막이를 넘지 못해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난제 아닌 난제다. 이동시장실은 바로 이런 현안을 시장이 직접 나서 얽힌 타래를 풀어주며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다.


이동시장실 운영 초기 가장 주목을 끈 민원 해결사례로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내 쓰레기자동집하시설의 잦은 고장과 입주민의 과다한 수리비 부담문제를 꼽을 수 있다. 기계 운영과 관리는 시스템 개발사와 민간업체 몫이지만 현장을 찾아 소통만으로 해결책이 간단히 도출됐다. 기계고장을 당장 어쩌지는 못할지라도 처리되지 못한 채 악취를 풍기며 쌓여가는 쓰레기로 인한 불편을 해소할 방안이 있다면, 시민불편은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주시는 폐기물 수거 횟수를 늘려 폐기물 처리 효율을 높였고, 위탁운영사 운영인력을 활용해 부품비용만 받고 직접 수리하는 순회점검반을 운영하는 체제를 갖추게 됐다.


올해 초 이동시장실을 통해 적성산업단지 내 인력부족도 현장소통으로 빠르게 찾아냈다. 인력부족 원인이 출퇴근 교통 불편 때문임을 확인한 파주시는 산업단지 공용 통근버스 임차비 지원으로 대응했다. 즉각적인 예산 확보가 어려웠지만 경기도 공모사업에 제안서를 내고 도비 지원을 확보해 2대 버스를 투입해 상반기 내 운행을 시작한다.


파주시 2024년 적성면 이동시장실 현장

▲파주시 2024년 적성면 이동시장실 현장. 사진제공=파주시

◆ 천원택시-똑버스 지속 확대…시민요구 수용

현장소통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시민 만족도와 체감도를 가늠해볼 기회가 된다. 이동시장실을 통해 파주시는 여러 핵심정책과 관련해 시민이 요구하는 개선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수용하며 정책 품질을 높일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냈다.


파주시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인 천원택시와 똑버스가 운행지역을 확대해가며 시민 만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렸는데, 이는 이동시장실을 통해 민의를 확인하고 수용한 결과다. 올해 초 각 읍면동을 순회하며 정책설명회를 겸한 이동시장실에서 출산지원금 확대에 대한 쏟아지는 건의를 받아들여 기존 10만원이던 첫째아이 출산장려금을 100만원으로 상향했다. 난임시술비-산후조리비 지원 확대를 추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협의 등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2023년 경기도가 농민기본소득의 지역화폐 사용처를 농축협 하나로마트로 확대 시행하게 된 데도 파주시 이동시장실 소통에 힘입은 바 크다. 기본소득 사용처가 연매출 10억원 이하 소규모 점포로만 한정돼 농자재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농민들 민원이 제기되자, 파주시가 경기도에 이런 민원을 적극 제기해 결국 정책 개선을 이끌어냈다.


파주시 2024년 과수농가 긴급 이동시장실 현장

▲파주시 2024년 과수농가 긴급 이동시장실 현장. 사진제공=파주시

◆ 단순한 민원해결 넘어 시민 협치 활성화 견인

폐현수막재활용조례, 맨발걷기 산책로 조성사업 수립에도 시민소통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동시장실은 단순히 지역문제 해결사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지지부진한 사업의 정확한 원인을 진단해 새 방향을 모색하고, 새로운 사업 발굴과 장기적 과제 설정 등 시정 전반에 걸쳐 시민과 협치를 활성화하며 시민민주주의 활로를 확대했다.


파주시는 전국 최초로 현수막 재활용과 폐현수막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행정 재정적 지원에 나섰다. 이는 관내 광고인단체와 가진 이동시장실 소통과정에서 나온 건의에서 출발했다. 2022년 9월 운정호수공원 우듬지 부근 흙길을 걷고 싶어도 수도시설이 없어 불편하다는 한 시민 민원에 파주시는 시의회를 통해 맨발걷기 활성화 조례 제정을 이끌어내고 6억7000만원 예산을 확보했다. 결국 이런 민원은 파주시 관내 7개 도심공원에 맨발걷기 산책로가 조성되는 기폭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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