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서 대표 수정 매개체 꿀벌 보호 차원에서 2017년 제정
2006년 미국 꿀벌 실종 첫 보고, 한국도 매년 100억마리 이상 감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벌 동면시기와 꽃 개화시기 간격 차 커져
유엔 “우리 모두는 꿀벌 생존에 달려 있다”…각국 보호 대책 호소
꿀벌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응애 같은 꿀벌 기생충 영향도 있지만, 지구온난화로 꽃 개화시기와 꿀벌의 동면시기가 서로 맞지 않게 된 영향도 크다는 분석도 있다. 유엔과 환경단체는 유기농 재배 확대, 밀원 면적 확대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3일 농업계에 따르면 유엔(UN)은 오는 5월 20일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을 맞아 꿀벌을 중심으로 수분 매개체의 중요성을 알리고, 각국에 매개체의 보호정책을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수분은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花粉)이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것으로, 생태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과정이다.
사실 이 날은 꿀벌만의 날은 아니다. 꿀벌, 나비, 박쥐, 벌새와 같은 다양한 수분 매개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이 가운데 꿀벌이 가장 대표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에 대표로 내세운 것이다.
5월 20일은 18세기 슬로베니아에서 현대 양봉 기술을 개척한 안톤 얀샤(Anton Janša)의 생일을 기념해 2017년 제정했다. 그는 '거의 관심을 받지 않고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꿀벌의 능력을 칭찬했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야생 꽃식물 종의 거의 90%가 동물 수분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 식량 작물의 75% 이상, 전 세계 농경지의 35%가 동물 수분에 의존한다. 수분 매개체는 식량 안보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뿐만 아니라 생물 다양성 보존의 핵심이다.
이 가운데 벌은 대표적인 수분 매개체이다. UN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90%의 식량을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벌의 수분 매개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농작물 중 17.8%도 벌의 수분 매개에 의존하고 있다.
오늘날 꿀벌 실종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꿀벌 실종 현상이 처음 보고된 것은 2006년 미국이다. 그해 11월 플로리다에서 꿀벌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첫 신고가 나왔다. 이듬해까지 미국 22개 주에서 꿀벌 수가 25~40%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현상을 벌집군집 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브라질을 거쳐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 바이러스성 전염병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 90%가 폐사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때부터 지속해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이 2023년 5월 공동 작성한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21년 겨울 동안 78억마리의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꿀벌군집붕괴현상이 벌어졌다. 피해 규모는 계속 커져 2022년 9~11월 사이에만 100억마리가 사라졌다. 2023년 초에는 약 14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됐다.
꿀벌 개체수 감소 원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유엔은 집약적인 농업 관행, 토지 이용 변화, 단일 작물 재배, 살충제,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 현상 등이 모두 꿀벌 개체수 감소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가운데 꿀벌은 온도에 민감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기후변화 영향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꿀벌의 동면시기와 꽃의 개화시기 간의 간격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린피스 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지난 100년동안 0.6°C가 오르며 우리나라의 봄꽃 개화일이 과거 1950~2010년대(약 60년간) 대비 약 3~9일이나 빨라졌다"며 “이는 양봉인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야생벌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 야생벌이 꽃이 일찍 피어나는 때에 맞춰 동면에서 스스로 일어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피어난 꽃도 이상기후로 인해 기존보다 더 빨리 떨어져 꿀벌도 무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화분과 화밀을 채집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밀원수인 아까시나무의 경우 꽃이 피어났는데도 꽃꿀 분비가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며 “21세기 후반에는 무려 23~27일이나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4월은 벌에게도 가장 잔인한 계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했다.
유엔은 꿀벌 보호 대책으로 △다양한 시기에 꽃 피우는 식물 심기 △농약 사용 제한 등 유기농 재배 확대 △생꿀 구매 △수분 모니터링 및 국제 연구 등 네트워크 협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 보고서는 △최소 30만ha 이상의 밀원수 면적 확보(현재 15만3381ha) △사유림 내 생태계 서비스 제공 조림의 직접 지불 확대 △도심지 공원이나 주거단지, 도로, 강가 등 부지에 조경 및 환경 미화 등 도시공원 확대 △범정부 차원에서 국무총리 산하 '벌 살리기 위원회'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엔은 “벌과 나비 같은 무척추동물의 수분 매개체 중 약 35%, 박쥐 같은 척추동물 수분 매개체 중 약 17%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며 “우리 모두는 꿀벌의 생존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