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출신 1명, 한수원 출신 4명
기술보다 조직 관리와 정책 이행에 방점
대통령의 한전 그룹체계 비판 이후
전력공기업 구조개편 인선 반영될 듯
▲(왼쪽부터)김범년 전 한전 KPS 사장, 김회천 전 남동발전 사장, 이종호 전 한수원 기술본부장, 전휘수 전 한수원 기술부사장, 조병옥 전 한수원 품질안전본부장
한국수력원자력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최종 후보군(5배수)이 확정되면서, 업계에선 인선 결과를 두고 '실용, 실무'를 강조해온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인선은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업무보고에서 발전공기업의 비효율성과 통합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CEO 선발을 넘어 전력 공기업 전반에 대한 구조 재편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종 5인 모두 '한전·한수원 전무급 이상'… 실무형 인사로 압축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이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최종 후보 5명은 모두 한전 또는 한수원에서 전무급 이상 요직을 거친 인사들로 구성됐다.
최종 후보자는 김범년 전 한전KPS 사장(전 한수원 발전본부장), 김회천 전 남동발전 사장(전 한전 부사장), 이종호 전 한수원 기술본부장, 조병옥 한국방사선안전협회 이사장(전 한수원 품질안전본부장), 전휘수 전 한수원 기술부사장으로 알려졌다.
공통적으로 대규모 조직 운영 경험과 정부·주무부처와의 협업 이력을 갖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이번 인선을 두고 “기술 리더십보다 조직 관리와 정책 이행에 방점을 찍은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원자력 기술 중심 인사들이 최종 단계에서 탈락하면서, 인선 기준이 '전문성'에서 '관리·조정 능력'으로 이동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뒤따른다.
대통령 “왜 발전사 나눴나"… 인선 시점과 겹친 메시지
이번 인선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시점이 절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발전공기업 체계를 언급하며, “왜 발전사를 이렇게 나눠놨는지 모르겠다", “사장만 여러 명 생긴 구조 아니냐"는 취지로 현행 발전자회사 체계의 비효율성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발전자회사 분할 이후 경쟁 효과가 제한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안전 문제가 심화됐다는 점도 지적하며, 공기업의 역할을 “수익 창출이 아니라 국민 안전과 공공성"으로 재정의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대통령 발언이 발전공기업 통합 또는 구조조정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 메시지였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회천 전 남동발전 사장, '통합 시나리오' 속 다크호스
이 같은 맥락에서 한전 경영부사장 출신인 김회천 전 남동발전 사장은 이번 인선에서 상징성이 가장 큰 후보로 꼽힌다.
김 전 사장은 원전 기술 라인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전 본사 경영과 발전 자회사 수장 경험을 모두 갖춘 인물이다.
업계에서는 김 전 사장이 최종 낙점될 경우 한수원 단독 경영을 넘어 발전 공기업 전반의 통합·기능 재편을 염두에 둔 인사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 전 사장이 아닌 한수원 출신 인사로 최종 결정된다면 2007년 김종신 전 사장 이후 19년 만에 내부 출신 사장이 임명되는 셈이다.
한 전력 공기업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의 발언과 이번 인선을 함께 놓고 보면, 차기 한수원 사장은 '원전 산업 리더'라기보다 '공기업 구조조정 국면을 관리할 인물'을 찾는 과정으로 보인다"며 “원자력인이 아닌 김회천 전 사장이 주목되는 이유다. 다만 원자력 기술과 관련한 경력이 전무해 누가 최종적으로 선임될지 관심이 쏠린다"고 말했다.
원자력 전문성은 뒷순위?… 엇갈리는 평가
한편 원자력 전문성이 강점으로 꼽히던 인사들의 탈락을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강조해 온 원자력 안전 거버넌스 원칙을 들어, “조직 관리 능력과 별개로, 원자력 산업 특유의 안전 문화는 사장 개인의 이해도와 경험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면접에서 탈락한 김무환 전 포항공대 총장과 박원석 전 원자력연구원장은 이 분야에 강점을 가진 인사들로 평가됐다.
이번 한수원 사장 최종 5배수는 단순한 인사 절차를 넘어, 정부가 한수원을 어떤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원전 수출과 산업 확장을 이끄는 '산업 리더', 발전공기업 재편 국면을 관리하는 '조정자' 사이에서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맞물린 이번 인선은, 한수원의 역할이 후자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선의 핵심은 '누가 사장이 되느냐'보다 '앞으로 발전공기업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에 있다"며 “최종 낙점 결과는 발전 5사 통합 논의의 방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