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줄어들면 경제 쪼그라들고 사회 역동성 잃어…일자리 놓고 경쟁·격차 심화도”
“고령자·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높여 생산인구 늘리고 고부가가치 산업 집중 육성을”
“우리 사회, 저출산 원인·해법 돈으로만 생각…정부도 경제적 지원 인식서 못벗어나”
“아이 낳고 싶은 생각 들도록 가족 가치·행복 강조하는 미디어 콘텐츠 많이 만들어야”
“인구구조 변화는 미래 대한민국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개발, 확장,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성숙한 사회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된다는 전제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에 있어서 법과 제도,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26일로 창간 35년을 맞는 에너지경제신문과 지난 3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서용석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 미래학자로 꼽히고 있다. 앨빈 토플러와 미래학 분야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 짐 데이터 교수의 한국인 제1호 제자이기도 하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서 미래학개론과 미래사회 변화구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미래정책 수립 등에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 자문을 활발히 펼쳐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밝힌 저출생 대응 관련 부총리급 정부 부처 신설 등 구상도 서 교수의 정책 제안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인구전쟁 2045' 등 미래 관련 저서를 펴낸 바 있다. 현재 카이스트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장과 미래전략연구센터장 등을 맡아 과학기술에 기반한 다양한 미래를 조망하고 국가 차원의 미래 전략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지난 2013년 인류가 당면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래전략 전문가 양성을 위해 설립됐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 심화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아세안(ASEAN) 국가 등 아시아의 주도적 역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인류는 고령화, 빈부격차, 만성적 실업, 에너지 고갈, 환경오염, 기후변화, 물 부족 등의 문제에 직면해 범지구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지구 환경 속에서 과학적 이론과 방법론에 근거한 미래전략 고급인력 양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다음은 서용석 교수와의 일문일답.
◇ “기술·기후·인구 등 구조적 변화 3대 動因과 플러스알파 '불확실성' 주목해야"
- 미래학자가 보는 앞으로 우리나라 변화상이 남다를 것 같다.
▲ 기본적으로 미래연구는 변화에 대한 연구입니다. 대학원에서는 기본적으로 구조적 변화의 3대 동인(動因)에 더한 '플러스 알파'(+ α)에 주목하고 있다. 구조적 변화의 3개 동인은 기술, 기후, 인구다. 플러스 알파는 불확실성이다. 구조적 변화의 동인과 불확실성은 모든 나라에 해당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이러한 변화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불확실성에도 크게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들이 가져올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경제는 쪼그라들고 사회는 역동성을 잃어갈 것이다. 기후위기가 더욱 심화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기술은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과 격차는 더욱 심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는 원인으로는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의 빈번한 발생, 초연결성의 확장, 파괴적 기술혁신으로 인한 의외성의 증가 등을 들 수가 있다.
- 우리에게 닥칠 미래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 먼저 미래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의 빈번한 발생이다.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범위와 정도 또한 기존 재해의 규모를 뛰어넘고 있다.
불확실성 증가를 견인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전 지구적인 동기화 현상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통신·교통 기술의 발전은 전 지구를 1일 생활권으로 연결시키는 초(超)연결 시대를 열었다. 이 시대는 전 지구적인 동기화 현상을 가져왔다. 위기의 전파력도 높아졌다. 단일 지역이나 국가에서 변수를 통제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다.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와해적 기술의 발전도 많은 의외성을 나타냈다. 어느 순간에 특이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그 어느 사회보다 급변하는 환경으로 인해 다양한 극단적 사건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연재해나 인위적 재난은 대한민국이 직면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극단적 사건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엄청난 폭우와 폭설, 강력한 태풍 등의 풍수해, 블랙아웃, 원전사고, 대지진, 백두산 폭발 등이 가져올 영향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는 재해나 재난이다.
자연재해 외에도 남북관계의 급변, 통일, 전쟁, 주한미군의 전면 철수 등은 비단 우리나라와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 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일대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인구정책은 다른 정책과 달라…단기간 성과 집착 말고 중장기적으로 봐야"
- 정부와 사회가 그간 오랫동안 많은 노력했는데도 왜 인구감소, 저출산 문제가 풀리지 않는가.
▲ 인구정책은 경제나 산업정책 등 다른 정책과 결이 많이 다르다. 저출산은 그 원인이 복잡하고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정책의 효과도 미미하고 성과도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면서 이뤄져야 될 부분이다. 특단의 대책이나 강력한 추진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저출산 대책 대부분이 고용, 주택, 교육 등의 구조적 원인에만 처방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 외에도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의 변화와 심리적 요인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저출산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내러티브(어떤 사건 등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돈이다. 결혼, 출산, 양육에는 많은 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기회비용도 포기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연금은 고갈되고 생산인구가 줄면서 경제도 축소된다는 등의 내러티브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정부도 출산을 경제적 지원이나 경제적 가치로만 연결하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이나 경제적 손실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는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디어가 바뀌어야 된다. 일부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너무 극단적이고 과장된 면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들은 더 이상 콘텐츠를 만들거나 편성해서도 안 된다. 조금 다른 소통 채널을 통해 특화된 콘텐츠들을 만들어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쪽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족의 소중한 가치, 가족이 주는 행복 등으로 콘텐츠를 구성해서 사회의 내러티브가 바뀌어야 한다.
◇ “노동력 부족문제 우려 안돼…경제의 질 높일 수 있는 방안 고민해야"
- 인구가 줄어들면 무엇보다 경제규모가 작아지고 결국 구성원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 노동력 부족 문제가 크게 우려되지는 않는다. 생산가능인구의 축소는 1인당 생산성 향상, 여성 인력이나 고령자들의 경제사회활동 참여 증진, 적극적인 기술 활용 등으로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다. 기술의 경우 일자리를 대체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과 협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소비력이 감소하면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의 세수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경제 자체가 쪼그라들 것이다.
결국 내수보다는 해외 수출에 더욱 의존적인 경제가 될 수도 있다. 비록 경제 규모는 작아지더라도 경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 스위스 같은 경우 인구는 적지만 엄청난 산업을 갖고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사람은 줄어들더라도 오히려 경제 규모는 커질 수 있고 1인당 생산성도 높아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구성원들이 보다 윤택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의견이다.
◇ “수도권 과도한 집중은 결국 경쟁 격화시켜…출산율에도 나쁜 영향을 미쳐"
- 인구감소는 수도권·지방 간 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는 문제도 불러올텐데.
▲ 수도권으로의 과도한 인구 집중은 결국 경쟁을 격화시켜 출산율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서울의 합계출산율(0.53)이 전국 평균(0.72)보다 낮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방의 경우는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율이 40%가 넘어간 지역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일부 지역은 인구 소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콤팩트 시티, 광역행정구역 개편 등에 논의가 하루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재고해야 한다. 지금도 지역에는 사람과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가 많다. 기존에 있던 버스 노선, 철도역 등이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는 새로운 인프라에 대한 투자보다는 기존 인프라의 유지·관리·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연금개혁 관련 국민토론·공론화 보며 본격적인 세대 간 갈등은 지금부터 시작이라 생각"
- 인구 감소 대책·정책을 놓고 세대 간 갈등이나 대립 조짐도 보이는데.
▲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고령화의 사회적 영향은 이제 부분적으로 감지되는 단계이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 갈등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제도 효과에서 주로 연유한다. 제도 효과란 인구구조의 변화로 기존 제도나 정책이 변화되었거나 새로운 제도 및 정책 도입으로 나타나는 영향이다. 연금개혁, 대학구조조정, 교원공급 조정,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이 그 사례다.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직장, 국가의 각 사회 영역의 제도 변화 과정, 예컨대 가치나 규범, 분배구조, 권력구조의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상충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고령화의 현 단계에서 고령화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많으나 제도적 파급성은 아직 크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향후 진행되는 압축적 고령화는 여러 사회 영역에서 높은 수준의 제도적 재배열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 과정에서 집단 간 이해관계의 상충이 빈발하는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 세대 간 갈등이나 대립은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 같나.
▲ 최근에 연금개혁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국민토론이나 공론화를 지켜보면서 본격적인 세대 간 갈등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정 세대가 다른 세대로 인해서 자신들 세대가 손해를 보거나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사회의 분배체계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이의가 확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대 간 자원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사회체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며 세대 간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연령 세대에 공격적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다.
특정 집단의 불만이나 항의가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형성되면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한다. 새로운 정치적 조직체를 만들거나 집합행동을 도모하며 정치적 동원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 “인구감소·고령화 전제로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법·제도·시스템 다시 설계해야"
- 인구구조가 바뀌면 시회 전반의 패러다임도 달라지지 않겠나.
▲ 기본적인 전제부터 바뀌어야 한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된다는 전제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에 있어서 법과 제도,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행 연금제도가 대표적이다. 지금의 연금제도는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제도다.
저출산 뿐만 아니라 고령화도 우리가 무시 못할 엄청난 쓰나미로 다가올 것이다. 일단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볼 때 그 인구가 조만간 30~40%를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85세 이상 초고령자들이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숫자로 급증할 것이다.
결국은 돌봄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정부 혼자서 저출산이나 고령화로 인해 발생하는 돌봄 수요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 이는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커뮤니티로 구성된 지역사회가 일부 담당을 해야 된다.
◇ “돌봄공동체 일원으로 기업 역할 매우 중요…인력 아닌 인재 양성에 집중"
-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의 적극적인 역할도 필요할 것 같다.
▲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다. 돌봄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기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출산과 양육, 돌봄 휴가와 휴직을 장려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휴가나 휴직으로 인한 인력 공백에 대한 동료들의 업무 부담에 대해 인센티브 제공이나 인사고과 혜택 등이 필요하다.
아울러 기업은 인력이 아닌 인재 양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작년에 23만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이 아이들이 가진 각자의 재능을 발굴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재로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들이 고령자나 여성 등의 재교육과 재취업 틀을 탄탄하게 만들어 유휴 인력을 활용하고 인간과 기계와의 협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한다면 인구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 중 하나로 기업 내외부에 학습 플랫폼을 구현해 평생학습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근로자들이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인구구조 변화 새롭게 설계할 중요한 기회…기존 패러다임 벗어나 성숙사회로 도약해야"
- 연구하신 우리나라 미래전략 청사진을 듣고 싶다.
▲ 인구구조 변화는 미래 대한민국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존의 개발, 확장,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성숙한 사회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성숙한 사회란 신뢰와 상호 호혜를 바탕으로 공평한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공평한 자원 배분을 의미하는 세대 간 정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래세대란 현재 세대의 결정과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미성년인 관계로 그들의 권익을 현실 정치나 정책에 반영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현재 세대의 누군가가 이들의 권익을 대변해주고 또 세대 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구조가 새롭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담 = 구동본 정치경제부장/부국장
정리 = 김종환 기자, 사진=유병욱 기자
■ 서용석 교수 프로필(약력)
△1969년 대전 출생 △서울 현대고 졸업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 사학 학사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 법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학 대학원 정치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현) △시니어비즈니스학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