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오염 대응 5차회의 11월 부산 개최 총괄
오염 관리 원료부터냐, 폐기부터냐 의견 다양, 조율 쉽지 않아
생산자재활용제도 등 한국 플라스틱 규제, 국제논의 이상 수준
국내 정유·화학산업, 플라스틱 문제 새로운 도약 계기 바라봐야
선진국 대비 환경부처 위상, 재정, 인력, 권한 한참 모자라

▲이창흠 환경부 기후탄소정책실장. 사진=윤병효 기자
인류에 의해 만들어진 가장 큰 구조물은 무엇일까? 길이 6700㎞의 중국 만리장성, 높이 830m의 아랍에미리트 부르즈 할리파라고 생각할 만하지만 이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것이 있다. 바로 태평양에 있는 쓰레기 섬이다. 면적이 무려 우리나라의 16배 크기이다. 인간들에 의해 버려진 플라스틱 같은 쓰레기들이 바다로 흘러 들어 순환해류를 통해 한 곳에 모이게 된 것이다. 거북이, 물고기 같은 해양생물들은 그것이 먹이인 줄 알고 먹고 있고, 먹이사슬에 의해 결국 인간이 그걸을 먹고 있다.
쓰레기 섬은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구성돼 있다. 한 때 인류의 최고 발명품으로 추앙받던 플라스틱은 쉽게 쓰고 버려지고, 반영구적으로 썩지도 않으면서 바다를 비롯해 지구 곳곳을 오염시키고 있다.
더 이상 플라스틱 오염을 방치할 수 없다는 각국의 의견이 모아져 2022년 2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됐다. 플라스틱 오염을 막을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 협약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유엔환경총회로부터 권한을 넘겨 받은 정부간 협상위원회(INC)는 총 5차례 회의를 통해 협약 최종안을 만들기로 했다. 1차 2022년 11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 2차 2023년 5월 프랑스 파리, 3차 2023년 11월 케냐 나이비로, 4차 올해 4월 캐나다 오타와 회의가 열렸고, 마지막 5차 회의가 우리나라 부산에서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린다.
부산 5차 회의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 최종안이 성공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갖고 있다.
이창흠 환경부 기후탄소정책실장은 플라스틱 오염 방지 협약과 부산 5차 회의 개최를 총괄하고 있어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캐나다에서 열린 4차 회의에도 교체수석으로 참석했다. 본지는 지난 8일 이 실장과 만나 INC 4차 회의 분위기와 쟁점 사항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이 실장은 INC 4차 회의가 쉽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고 평가했다.
“유엔환경총회 결의안에는 플라스틱 전주기에 대해 다루자는 내용만 있고, 구체적 내용은 없다. 그렇다 보니 어떤 국가는 플라스틱 원료 부문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국가는 오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폐기 부문만 관리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원론적 부분에서 논쟁이 반복된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원래 협상이라는 게 별 진전이 없다가도 막판에 확 진도가 나가기도 한다. 아직 기대만큼 성과는 없지만 뭔가 가능성을 높여가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한다."
회의 막판에는 페루와 르완다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처럼 목표연도를 정하고 그때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을 몇 퍼센트 감축하자는 제의를 하기도 했다. 이는 논의 사항 중 가장 급진적인 편에 속한다. 이 실장은 이 제안의 실현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진 않았다.
“협약이라는 게 모든 나라가 동의를 해야 한다. 이란과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플라스틱 폐기 부문만 관리하면 된다고 보수적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런 급진적인 제안이 성사되긴 어렵다고 본다. 5차 회의가 끝난 후 실제 협약서를 작성하는 회의국을 선정해야 하는데 그에 대비한 제안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석유화학 강국이다. 그만큼 플라스틱을 많이 생산한다는 뜻이다. 그런 나라에서 플라스틱 오염 대책 회의가 열린다. 여기에 내년 6월 5일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주제로 하는 세계 환경의날 행사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오염 대책을 선도하다가 자칫 주요 산업이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닐까. 이 실장은 그럴 염려는 없으며, 오히려 국내 관련 산업이 플라스틱 문제를 새 도약 계기가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는 20년 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을 시행했고, 일회용 플라스틱 및 포장재 제도, 재생원료 사용, 분리수거 및 재활용 시스템, 유해 화학물질 제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국제 논의 이상 수준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생산량 감축제가 채택되지 않는 한 국내 석유화학 및 정유산업이 타격을 받진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바이오납사, 재활용, 품질, 유해 화학물질 사용 제한 등의 부분에서 국내 관련 산업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실장은 국내 정유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발단에 환경부가 있다고 얘기했다.
“약 30년 전, 환경부가 기름 품질을 대폭 높였다. 그 때 정유업계의 반발이 컸다. 당시 환경부장관이 연구자가 돼 정유업계 사장들과 선진국을 돌며 학습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기름 품질이 세계 최고가 되면서 정유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됐다. 지금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중국 수출이 막히면서 어려운 상황이다.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생존이 힘들다. 새로운 전략 차원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산에서 열리는 INC 5차 회의의 성공 여부는 플라스틱 오염 대책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협약 최종안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환경부의 어깨가 많이 무거운 상황이다.
“5차 회의에서 협약 최종안이 반드시 나오도록 할 것이다. 다행히 4차 회의와 5차 회의 중간에 회기간 회의가 열리게 됐다. 과학전문가그룹이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또한 선진국들의 출연으로 개도국을 지원하는 재정 메카니즘도 열리게 됐다. 우리는 양자든, 다자든 여러 나라들을 계속 만나면서 5차 회의에서 반드시 협약 최종안을 만들자고 많이 요청하고 있다."
끝으로 이 실장에게 업무가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기후탄소정책실의 관할업무를 보니 우리나라 기후 관련 대부분의 업무를 이 실장 조직이 맡고 있었다.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기후 전담 부처를 최상위급으로 두는 것은 물론 재정, 인력, 권한도 전폭적으로 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정과 인력과 권한은 빈약하면서 하는 일은 너무 많다.
“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후도 담당하면서 국제협력까지 맡아야 하니까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후도 기후전략, 기후적응, 배출권거래 등이 있고, 지자체의 탄소중립 기본계획 수립도 끌고 가야 하고, 산업계와도 소통해야 한다. 조금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다만 기후 문제는 이제 우리의 모든 사안에 내재돼 있다. 모든 문제는 탄소중립으로 귀결된다. 이거를 못하면 환경부의 존재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성공하는 데 일말이라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