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항소심···재판부 “최태원 재산 모두 분할 대상”
1심 판단 뒤집어 ‘충격’···대법원 결정까지 불확실성 지속될 듯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로 1조3000억원 이상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SK그룹이 '사법 리스크'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심 판단이 완전히 뒤집힌데다 만일 실제 1조원 이상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주력사 지분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최 회장 항소 이후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 “최태원, 노소영에 1조3808억 현금 재산분할"…역대 최고 금액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가 피고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 넘게 늘어난 금액이다. 재산분할로만 놓고 보면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 최대 규모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 후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가액 산정 가능 부분만 해도 219억 이상을 지출하고 가액 산정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며 “혼인 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한 1심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 관장이 SK그룹의 가치 증가나 경영활동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회사 SK 지분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1심 판단도 뒤집혔다.
재판부는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언급했다. 두 사람의 합계 재산을 약 4조원으로 본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을 토대로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에 대해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2019년 2월부터는 신용카드를 정지시키고 1심 판결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소송 과정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88년 9월 결혼해 세 자녀를 뒀으나 2015년 파경을 맞았다. 최 회장은 당시 “노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며 이혼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 사이에서 낳은 혼외 자녀의 존재도 이때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해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들어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소송은 2018년 2월 시작됐다. 당초 이혼할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하겠다고 입장을 바꿔 맞소송(반소)을 냈다.
노 관장은 이혼의 대가로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회사 SK 지분 중 50%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1심 법원은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에게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이 기원인 '특유재산'이라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재산분할 대상을 주식이 아닌 '현금 2조원'으로 변경하고, 요구 위자료도 30억원으로 올렸다.
◇ '현금 1조3800억원' 압박 계속될 듯···SK 주가는 급등
재계 관심사는 재판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 경영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합계 재산을 4조원으로 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재판부의 판결이 알려진 직후 SK그룹 지주사인 SK(주) 주가는 장중 한때 15% 이상 급등했다.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9.26% 오른 15만8100원이었다.
최 회장은 특수관계인들과 함께 SK(주) 지분 25.44%를 들고 있다. 최 회장 지분율은 17.73%다.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7.55%) 정도이고 자사주도 25.52%나 있어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수준이다. SK(주) 시가총액은 30일 종가 기준 11조5727억원이다. 단순 대입하면 그룹 지주사 지분의 10% 이상을 이혼에 따른 위자료 등으로 지급해야한다는 뜻이다.
아직 항소심 결정이긴 하지만 경영권 관련 불확실성이 생겼다는 점은 SK그룹 입장에서 분명히 악재라는 분석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이혼 소송과 별도로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앞서 1심 선고 이후 장외 공방을 치열하게 벌여온 것이다.
노 관장은 작년 3월 최 회장의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3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노 관장 측은 “유부녀인 김 이사장이 상담 등을 빌미로 최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 부정행위를 지속하고 혼외자까지 출산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최 회장 측은 이에 “노 관장과의 혼인관계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완전히 파탄 나 있었다"며 “재산분할 재판에서 유리한 결론을 얻기 위해 일방적인 입장을 언론에 이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작년 11월에는 노 관장의 대리인이 취재진에 “최 회장이 김 이사장에게 쓴 돈이 1000억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고 최 회장 측은 그를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했다.
최 회장이 중·장기적으로 자녀들에게 지분을 증여하는 데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최 회장은 노 관장과 사이에서 세 자녀를 뒀다. 이 중 막내 인근씨 등은 SK 계열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다만 지주사 지분 확보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SK그룹은 지주사가 자사주를 지나치게 많이 들고 있는 등 아직 완전한 지배구조를 확립하지는 못한 상태다. 이는 지난 2003년 벌어진 '소버린 사태'의 후폭풍 성격도 짙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최 회장이 조 단위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판결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노 관장을 대리하는 김기정 변호사는 이날 항소심 판결 이후 취재진들에게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주의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한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SK 주식도 공동 재산'이라는 판단에 대해서는 “SK 주식 자체가 혼인 기간에 취득한 주식"이라며 “실제 부부 공동재산으로 형성돼 30년간 부부생활을 거치면서 확대됐으니 같이 나누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 측은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고 공식화했다. 최 회장 변호인단은 “재판 기간 동안 회사와 사회 구성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면서도 “이번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 변호인단은 “항소심 재판부는 처음부터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듯 그간 편향적이고 독단적으로 재판을 진행해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 측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재판에 임했고, 상대방의 많은 거짓 주장에 대해 일일이 반박 증거를 제출하며 성실히 증명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노 관장 측의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하나하나 공개했다"며 “아무런 증거도 없이 편견과 예단에 기반해 기업의 역사와 미래를 흔드는 판결에 동의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특히 6共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며 오히려 SK는 당시 사돈이었던 6共의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했고, 노 관장 측에도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해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