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더해 생산성 증가율까지 0%대로 추락하며, 앞으로 혁신을 통한 생산성 개선이 없다면 2040년대는 한국 경제가 역성장 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10일 공식 블로그에 올린 '연구·개발(R&D) 세계 2위 우리나라, 생산성은 제자리' 보고서에서 “출산율의 극적 반등, 생산성의 큰 폭 개선 등 획기적 변화가 없을 경우 우리 경제는 2040년대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총인구(통계청 장래인구추계 기준)가 2020년 5184만명을 정점으로 2040년 5006만명, 2070년 3718만명까지 줄어들기 때문인데, 이런 초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훼손을 만회할만한 경제 전반의 혁신마저 부족하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R&D 지출 규모(2022년 기준 GDP의 4.1%)와 미국 내 특허출원 건수(2020년 기준 국가별 비중 7.6%)의 세계 순위는 각 2위, 4위다. 하지만 기업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 0.5%까지 낮아졌다. 특히 미국에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혁신 실적이 우수한 혁신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같은 기간 연평균 8.2%에서 1.3%로 추락했다.
이처럼 생산성 성장세가 약해진 것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혁신 실적의 양만 늘고 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종업원 수 상위 5% 기업)은 전체 R&D 지출 증가를 주도하고 특허출원 건수도 크게 늘렸으나, 생산성과 직결된 특허 피인용 건수 등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눈에 띄게 감소한 뒤 이전 추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혁신자금 조달이 어려운 데다 혁신 잠재력을 갖춘 신생기업 진입까지 줄면서 2010년대 이전 가팔랐던 생산성 증가세가 꺾였다.
한국기업혁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에 속한 저(低)업력(업력 하위 20%) 중소기업 중 외부자금·내부자금 부족을 혁신 저해 요인으로 지목한 업체 비중은 2007년 각 9.9%, 12.8%에서 2021년 45.4%, 77.6%로 뛰었다. 서비스업 저업력 중소기업에서도 이 비중은 2011년 각 9.8%, 19.7%에서 2020년 44.9%, 66.8%로 급증했다. 저업력 중소기업 중 설립 후 8년 안에 미국 특허를 출원한 신생기업 비중도 2010년대 들어 계속 뒷걸음쳐 10%를 하회한다.
한국 기업 혁신의 질이 떨어진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초연구 지출 비중이 축소됐기 때문이라고 한은은 진단했다. 응용연구는 혁신 실적의 양을 늘리는데 효과적이지만, 기초연구는 선도적 기술개발의 기반인 혁신의 질과 밀접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기초연구 지출 비중은 오히려 2010년 14%에서 2021년 11%로 줄었다.
중소기업 혁신자금 조달난은 2010년대 들어 벤처캐피탈에 대한 기업의 접근성 악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가·기업 패널 분석 등에 따르면 벤처캐피탈의 접근성이 좋을수록,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의 투자회수 시장이 발달할수록 혁신 실적이 좋아지는데 한국의 경우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저조하다.
신생기업 진입 감소의 원인으로는 '창조적 파괴'를 주도할 혁신 창업가의 부족 현상이 꼽힌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미국 선행연구 결과 대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창업가는 주로 학창 시절 인지능력이 우수한 동시에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똑똑한 이단아"라며 “하지만 한국의 경우 똑똑한 이단아는 창업보다 취업을 선호하고, 그 결과 시가총액 상위를 여전히 대부분 1990년대 이전 설립된 제조업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한국 기업의 혁신과 생산성 개선의 해법으로 기초연구 강화, 벤처캐피탈 혁신자금 공급 기능 개선, 혁신 창업가 육성을 위한 사회 여건 조성을 강조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구조모형을 이용해 정책 시나리오별 효과를 추산한 결과, 연구비 지원과 산학협력 확대 등으로 기초 연구가 강화되면 경제성장률은 0.18%포인트(p) 높아질 수 있다"며 “자금공급 여건 개선과 신생기업 진입 확대로 혁신기업 육성이 진전돼도 성장률이 0.07%p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