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당연하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6.30 12:23
김현우 자본시장부장(부국장)

▲김현우 자본시장부장(부국장)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는 주식회사의 임원인 이사가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아무런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행 상법 제382조3에서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한다'고만 규정할 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누적된 대법원 판례에서도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자본시장에서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대표님도 주식을 많이 소유한 주주이고 계열사를 거느린 모기업도 의사결정권을 가진 주식을 다수 보유한 법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현실에서는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가 아니라 소위 '오너에 대한 충실의무' 또는 '회장님에 대한 충실의무'로 곡해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삼성그룹의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에 대해 2009년 대법원은 '기존 주주들 간의 문제일 뿐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후 누적된 판례에서도 주식회사의 이사는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만 개별 주주들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액주주들은 물론 학계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상법개정을 통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위무'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용우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정부도 이에 화답하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주식시장을 활성화 하려는 의지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목소리가 맞물리는 모양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주주의 권리 행사가 보호·촉진되고, 모든 주주가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는 기업 지배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쪼개기 상장' 같이 특정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전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는 이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사가 주주들에 이익에 충실할 경우 공격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집행이 어려워져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사에 대한 불필요하거나 악의적인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에서 이 같은 논란에 '배임죄 폐지'의 당근책을 꺼냈지만. 재계에서는 이를 맞교환 할 성격은 아니라는 '불가' 입장이다.


재계의 우려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자. 재계에서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투자 의사결정에서 비효율적이라 불필요하고, 소송 남발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프랭크 이스터브룩 미국 연방법원 판사와 다니엘 피셀 교수가 쓴 저서 '회사법의 경제학적 구조'에서는 '회사법의 목적은 회사 가치의 극대화'이며 '기업과 주주에게 최적인 것은 사회 전체 관점에서도 최적'이라고 분석한다. 어느 곳에도 '기업의 총수나 경영자의 최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투자의사 결정에 무조건 반발하거나, 회사의 이사를 괴롭힐 목적으로 소송을 남발하는 것이 걱정돼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배재하는 것은 지난 산업화 시대에 고속성장을 위해 과감하고 신속한 '가부장적인 리더십'이 필요했던 지나간 시대의 논리일 뿐이다.


실제 선진 자본시장인 미국에서도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꾸준히 유지하며 새롭게 배출하고 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기업의 오너나 경영자의 사적이익에 대해 충돌할 뿐이지, 경영상 판단이나 모험적 투자를 원칙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짓밟히는 현장은 다수의 코스닥 상장사 주주총회에 가면 극적으로 목도할 수 있다.


지분을 10% 남짓 가지고 이사회를 장악한 경영자가 90%가 넘는 소액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의를 해도 뚜렷히 막을 방법이 없다. 경영자가 고른 의장이 회사라고 착각하는 '오너의 이익'을 위해 의사봉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를 장악한 경영자는 회사의 자산인 건물을 저가에 매각하고, 불필요한 부동산을 고가에 매입하는 등 편법으로 자산을 빼돌리기도 하다. 전환사채(CB)를 꺾기로 남발하며, 영업손실 상황에서 이사의 보수를 증액하지만 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이를 저지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 경영상의 판단 앞에서 막히는 것이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선진 자본시장으로 진입을 노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위상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파이를 키운다는 목적으로 경영자나 오너의 사적이익까지 눈감아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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