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여성의 리더십이 필요한 에너지 산업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7.24 22:58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국제협력실장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국제협력실장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국제협력실장

히틀러는 “여자의 세계는 남편, 가족, 자녀, 집이다. 여자가 남자의 세계에 밀고 들어오는 일은 옳지 않다."라며 여성 근로자 80만 명을 해고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제한했다. 역설적이게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남성들이 전쟁터로 떠나는 바람에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가 많아졌다. 이들은 전후 경제 부흥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여성은 우리 경제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1966년부터 10년간 1만 명이 넘는 간호사가 독일에 파견되었다. 이들이 낯선 곳에서 힘들게 일해서 번 외화는 경제 발전을 위한 마중물로 사용되었다. 독일로부터 차관을 받을 때도 간호사들의 월급을 담보로 제공했다. 경제 개발 초기에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이었던 가발은 1970년 총 수출액의 9.3%를 차지하며 수출 품목 3위에 올랐다. 가발의 원료인 머리카락은 당시 우리 어머니와 누이의 것이었다. 1970년대 봉제공장이 밀집한 동대문 평화시장의 근로자 중 85.9%가 14~24살 여성이었다. 당시 섬유·의류 산업은 경제를 일으켜 세운 효자산업이었다.


과학자의 이미지는 늘 남성적이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위기를 다룬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주인공은 모두 남성이다. 합리적이고 냉철한 듯 보이지만 이성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이들로 묘사된다.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는 자연은 여성의 소명을 어머니와 주부로 설계해 놓았다며 한때 여성 과학자를 제자로 받지 않았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에밀 피셔는 여성의 긴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화재가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실험실에 여성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적도 있다.



여성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여성은 추상적인 과학이나 엔지니어링에 적합하지 않다거나, 사물 보다는 인간관계에 관심을 둔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미국에서 수십 년간 실시한 '과학자 그리기'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에 여성 과학자를 그린 비율이 1%였던 것이 계속 증가하여 28%에 이르렀다. 일말의 희망은 보이는 결과이다.


대표적인 과학기술 분야인 에너지 산업 역시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적합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3 세계 에너지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에너지 분야에서 여성 인력은 20% 미만으로 전 부문 평균인 40%에 훨씬 못 미친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석유·가스 산업의 여성 비율은 22%, 재생에너지 산업은 32%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에너지 공기업의 여성 비율을 살펴보면, 한전은 23.5%, 석유공사는 18.2%, 가스공사는 13.1%에 불과하다.




산업화 시대에는 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장 중요했다. 정부가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맞춰 에너지 공기업이 전력망, 가스망, 열수송관과 같은 인프라와 발전소를 건설하면 됐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에너지 믹스를 고효율의 저탄소형으로 바꿔나가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 업계는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전력 분야의 갈등의 골이 깊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전통적인 발전 연료인 석탄,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은 줄고, 대표적인 무탄소 에너지인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기상상황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을 고려하여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한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일사분란, 빠른 속도가 성장시대의 덕목이었다면, 기후위기 시대에는 다양성, 창의성, 관계지향성이 필요하다. MIT의 집단지성센터는 여성 참여 확대와 같은 다양성이 커지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여성은 비언어적 단서를 읽어내고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데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IEA에서도 여성이 혁신적이고 포괄적인 솔루션의 핵심 원동력이므로 성별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너지 산업에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고 이들의 의사결정 권한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국제기구들은 오래 전부터 각종 컨퍼런스에 여성을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필자도 위원회, 회의, 발표에 여성 전문가를 꼭 참여시키고 있다. 앞서 살펴본대로 여성들은 경제 부흥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에너지 업계도 여성들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현재 겪고 있는 갈등을 완화시키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데 여성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와 기업이 지원과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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