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에 은행권 선정산대출 ‘불똥’...타 업체로 번질라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7.31 16:37

티메프 입점업체 선정산대출 취급 잠정 중단
SSG닷컴, 쿠팡 등 타 업체는 대출 가능

‘정산주기 최대 2개월’...울며 겨자먹기로 대출 이용
재고자산 회전율↑, 추가수익 창출 수단

제일은행 티메프 대출한도·대상 확대
선정산대출 문제점 발견시 추가 취급 중단 우려

티몬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건물.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의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가 향후 은행권의 선정산대출 상품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는 물건을 팔아도 판매대금을 정산받기까지 최대 두 달이 걸리는데, 이 기간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출이자를 지불하면서 선정산대출을 이용했다.




그러나 일부 은행이 티메프 입점 업체에 선정산대출 한도, 대상을 확대함에 따라 판매자들이 티메프로 유입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은행권은 현재 티메프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선정산대출 취급을 잠정 중단하고, 대출 만기가 도래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대출금 기한을 6개월에서 1년가량 연장하도록 안내 중이다. 쿠팡, SSG닷컴 등 다른 쇼핑몰 입점업체는 그대로 대출 상품을 공급 중이다. 다만 티메프 사태의 파장이 커지거나 금융당국으로부터 별도의 지침이 나올 경우 선정산대출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요건이나 한도가 까다로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긴 정산주기에 '울며 겨자먹기식' 선정산대출 이용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SC제일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은 이달 23일부터 티몬, 티몬월드, 위메프 등 일부 쇼핑몰의 선정산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쿠팡, SSG닷컴 등 다른 쇼핑몰 입점업체는 선정산대출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선정산대출은 은행들이 플랫폼 업체와 약정을 맺고 운영 중인 일종의 운전자금 대출 상품이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가 은행으로부터 판매대금을 먼저 지급받고, 은행은 정산일에 정산금을 받아 자동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는 구조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판매대금 정산까지 최소 두 달 이상 걸리는 공백 기간에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현금유동성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 대출을 받은 자금으로 다른 제품을 사고 팔며 재고자산 회전율을 높이고,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즉, 플랫폼 입점업체 입장에서는 두 달 이상의 정산주기로 인해 대출금리를 지급하면서까지 선정산대출을 이용하는 것이다.



SC제일은행, 티메프 대출한도·대상확대 논란

이 가운데 SC제일은행은 티몬월드에 입점한 판매자들을 대상으로 선정산대출 한도를 월평균 매출액의 1.5~3배까지 늘리면서 논란이 됐다. 티몬월드가 아닌 기존 업체들의 대출 한도는 최소 500만원, 최대 20억원이다. 제일은행은 차주의 직전 3개월 평균 월 매출액의 1.5배 이내로 대출 한도를 제한한다.




제일은행은 선정산대출 대상도 다르게 적용했다. 제일은행의 선정산대출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 매출액 500억원 이하이고, 사업자 등록일로부터 1년 이상인 쇼핑몰 제휴업체여야 한다. 다만 티몬월드 제휴 파트너는 연 매출액 1300억원 이하여도 대출이 가능하도록 대상자를 확대했다. 결국 제일은행이 대출대상, 대출한도를 확대하면서 더 많은 판매자가 티몬월드에서 거래하도록 유도했고, 이들이 더 많은 물건을 떼어와서 매출액을 늘리는 구조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 회사는 국내 은행권 가운데 가장 많은 선정산대출을 취급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 업체 대상 선정산대출 규모'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선정산대출 건수는 2261건, 대출금액은 총 1584억원이다. 은행별로 보면 SC제일은행이 815억7000만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 766억3000만원, 신한은행 2억1000만원(14건) 순이었다.


업계에서는 금융감독원이 티메프에 1조원 이상의 건전성, 유동성 이슈가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제일은행을 포함한 은행권의 선정산대출을 문제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은행권은 선정산대출 한도를 확정할 때 플랫폼 입점업체의 거래량, 반품률, 배송률 등의 수치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결정한다. 해당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티메프가 대규모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식으로 고객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한도를 확대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제일은행이) 대출한도를 확대하지 않았다면 티메프로 갈 이유가 없었다는 일부 판매자들의 주장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며 “(대출한도를 늘리는 과정에서) 어떠한 내부 프로세스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티메프가 이렇게 무너질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정산대출 추가 미비점 발견시 타 업체 피해 가능성

결국 소상공인들이 선정산대출을 이용하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최대 두 달까지 소요되는 정산주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네이버페이의 경우 배송시작 다음날, 결제 후 약 3일 만에 대금의 100%를 정산하는 빠른정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국회에서 SC제일은행이 티몬 판매자들에게 선정산대출 한도를 늘려줬다는 지적에 대해 “현황은 어느 정도 파악했고, 특별히 SC제일은행의 영업 정책 등에 대해 추가적인 내용을 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만일 선정산대출에 특이사항이 발견되면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선정산대출 문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온라인 소상공인들의 정산주기가 단축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정산대출 요건까지 까다로워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에게 돌아간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당 대출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은행들이 업계 시장점유율, 매출액 등의 상황에 따라 한도를 유연하게 조정했을 것"이라며 “티메프사태로 시중은행의 선정산대출을 문제삼는 시각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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