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난기류가 일등석만 피해간답니까?”…대한항공 이코노미석 라면 폐지 ‘갑론을박’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8.04 10:44

사측 “고밀도 좌석, 여러 개 동시 전달…화상 입을 가능성↑”

노조 “산업 재해 노출…본연 업무 집중, 회사 정책 적극 지지”

시민 “위험하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 전형적인 군대식 발상”

김선아 교수 “상위석 유지, 서비스-안전 사이 타협점 찾은 셈”

대한항공이 이코노미석 승객들에게 제공 중인 농심 신라면.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이 이코노미석 승객들에게 제공 중인 농심 신라면. 사진=연합뉴스

최근 난기류의 급증세에 따라 대한항공이 기내 안전을 이유로 이코노미석 탑승객에 대한 라면 서비스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일등석과 비즈니스(프레스티지)석 탑승객에 대해서는 해당 서비스를 지속할 방침이어서 형평성 논란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대한항공이 원가절감과 함께 객실 승무원들이 귀찮아 하던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폐지했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안전과 서비스 간 균형을 찾는 과정에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평가도 나와 이목이 집중된다.




4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오는 15일부터 장거리 노선 기내 간식 서비스 개편에 따라 이코노미석 라면 서비스를 중단한다. 항공 난류 발생 빈도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른 조치다.


항공 난류는 항공기 운항에 지장을 주거나 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난기류 중 주로 넓은 범위에 걸쳐 수시로 발생하는 불안정한 공기의 흐름의 총칭으로, 예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 런던발 싱가포르행 싱가포르항공 321편은 안다만해 상공을 통과하던 도중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요동쳤고, 탑승객 1명이 사망하고 객실 승무원을 포함한 14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를 겪었다.



영국 레딩대학교 연구진은 기후 변화로 인해 북대서양의 한 지점에서 심각한 수준의 난기류가 1979년에는 연간 17.7시간 지속됐지만 2020년에는 27.4시간으로 54.8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이유로 대한항공은 이코노미석에 대한 컵라면 제공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고 발생 건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뜨거운 물을 사용해야 하는 특성상 컵라면으로 인한 화상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코노미석의 경우 좌석 밀집도가 높아 객실 승무원이 여러 개를 동시에 옮겨야 하고, 테이블도 작아 내용물을 쏟게 되면 취식객의 옆자리에 탄 탑승객이 화상을 입을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현재도 상황이 이런데 난기류 발생 시에는 객실 승무원과 승객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인 만큼 가능한 범위 내에서 화상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대한항공 여객기 갤리 내 전기 주전자. 사진=유튜브 채널 '우다다쮸 지우짱' 캡처

▲대한항공 여객기 갤리 내 전기 주전자. 사진=유튜브 채널 '우다다쮸 지우짱' 캡처

반면 일등석과 프레스티지석 고객을 대상으로는 라면 서비스를 유지하고, 자회사인 진에어에서는 난기류에 대비해 종이 지퍼백에 담아 제공하는 등 유상 판매를 이어갈 계획이어서 앞뒤가 안 맞는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가 절감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전면 폐지가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소식을 접한 A씨는 “위험하니까 대번에 서비스를 하지말라는 건 전형적인 '군대식 발상'"이라며 “여행 컨텐츠 측면에서 보면 비행기 안에서의 즐거움을 줬다 빼앗는 셈"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B씨는 “일등석이나 프레스티지석에는 난기류가 피해간다는 보장이 있느냐"며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는 것 같아 빈정 상한다"고 했다.


C씨는 “그저 객실 승무원들이 하기 싫어했던 일을 이때다 싶어서 없앤 것 아니냐"며 “대한항공도 진에어처럼 돈 받고 팔면 되는 일인데, 모회사와 자회사가 '탈착식 독립 경영'을 하는 셈"이라고 힐난했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대한항공 본사. 사진=박규빈 기자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대한항공 본사. 사진=박규빈 기자

대한항공은 라면 폐지에 따른 이코노미석 고객 만족도 변화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진행했고 반발도 충분히 예상했지만 고심 끝에 이 정책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 홍보를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실 내에서도 보도자료 작성에 대해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렸지만 객실승무본부의 강력한 요청으로 결국 발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의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이코노미석 승객들에게 제공할 신규 기내 간식은 콘덕·피자·핫포켓 등 콜드밀로, 컵라면보다 단가가 2배 가량 높아 비용 절감 차원에서 볼 문제일 수 없다"고 전했다.


대한항공 노동조합 관계자는 “객실 승무원들은 좁은 갤리(조리실)에서 워터 보일러 등을 다루며 손이나 팔을 데는 등 산업 재해에 노출돼있다"며 “고객 서비스가 줄어든 만큼 기내 보안 등 운항 안전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회사의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대한항공이 일등석과 프레스티지석 고객에게는 객실 승무원으로 하여금 봉지 라면을 끓여 대접에 담아 내어주는 방식을 고수하는 점에 대한 이유에도 관심이 쏠린다.


아시아나항공 객실 승무원 출신 김선아 수원과학대학교 항공관광과 교수는 “상위 등급의 좌석을 구매한 승객이 라면 하나를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고객 니즈 차원에서 아쉬움이 생길 것"이라며 “좌석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공간이 넓은 만큼 대한항공이 서비스와 안전 사이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통상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의 경우 라면 용기 아래에 트레이를 받쳐주고 디너 냅킨도 제공해 난기류 상황에서도 바로 화상을 입지 않게 할 일종의 안전 장치가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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