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정성 강화와 부자 감세를 표방해온 윤석열 정부 기조에 '균열'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변화'를 표방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번에도 '소외계층과 대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 대표는 지난 1일 오전 국민의힘이 '전국민 25만원 지원법' 필리버스터에 앞서 개최한 최고위원회 사전회의 중 관련 대응에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여당은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수단인 필리버스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전국민 25만원 지원법' 강행 처리에 '여론전'을 걸고자 했다.
그러나 한 대표는 외부 여론 분위기를 전하며 “우리가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더라도, 고민해서 대안을 제시해보자"는 취지로 전해졌다.
한 대표 언급에 추경호 원내대표는 “재원이 13조원이 들어가는 포퓰리즘 사업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며 필리버스터 불가피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당일 오후에 필리버스터가 예정돼 있었고, 원내지도부가 대국민 여론전을 위해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국민의힘은 예정대로 필리버스터에 돌입했고, 이 법안이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되자 윤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한 상태다.
전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윤 대통령이 앞서 '감정적 비난'을 쏟아냈을 만큼 그간 정부·여당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법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왜 25만원만 주는가. 한 10억원씩, 100억원씩 줘도 되는 것 아니냐"라고까지 비꼬면서 지원법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우리가 지하지원이나 부존자원을 가지고 자급자족하는 나라가 아니지 않나"라며 정부 곳간이 위급한 상황임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정부는 부자 감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재정 여건을 다소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윤 대통령 발언 3주가량 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국세수입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내년 이후 수출 증가에 따른 기업실적 호조, 투자촉진 등 정책효과가 나타나면 전반적 세수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날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정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방침과 관련해 “(세 부담 대상이) 초부자, 초자산가들이 대부분이라는 전제에서 그러면 높을수록 좋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에 더 중점을 뒀던 것은 결국은 기업 승계 부분"이라며 “기업이 원활하게 유지돼야 고용이 되고 투자가 되고 또 다시 복지로 선순환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초부자들에 감세는 약자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투자라는 논리다.
그러나 '수도권 강세' 성향 여당 정치인들을 중심으로는 이와 다른 시각이 노출됐다.
경제 전문가인 유승민 전 의원은 상속세·금융투자세 등과 관련해 “지배 대주주가 전횡을 일삼고 사익을 편취하는 재벌 대기업들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약자 동행'을 표방하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뿌릴 돈이면 차라리 '티메프 사태'로 피해를 본 영세 소상공인을 실질적으로 도울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감세는 투자, 복지는 비용'이라는 정부 시각에서 벗어나 '선별 복지'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오 시장은 “차제에 여야가 약자를 위한 '핀셋 복지'에 대한 논의에도 착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민주당에 사회적 취약계층을 돕는 서울시 '약자 동행' 동참을 촉구했다.
'민심 눈높이'를 강조해온 한 대표 역시 복지 비용 축소론보다는 선별 복지 강화론에 더 가까운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한 대표는 전날 최고위 회의에서 취약계층 지원과 관련해 “계속되는 폭염으로 국민들 피해가 심하다. 폭염기에 전기료 부담을 줄여드리기 위한 대책도 당정이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 한 대표는 “국민들이나 서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나. 1∼2만원이라도 지금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거듭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 경제부총리 출신인 추 원내대표는 “정부 측 설명을 듣고 다시 논의해보자"며 거리를 뒀다고 한다.
추 원내대표는 누적된 한전 적자 상황과 정부가 이미 시행 중이던 전기료 감면 정책 등도 한 대표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