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말복 지나도 낮 체감 35도 찜통더위 계속…역대 최장 열대야까지
시민단체, 내달 강남대로서 행동 촉구…“기후 아니라 세상 바꾸자” 행진
“원래 여름을 좋아하지만 올해 더위는 좀 너무하다 싶네요. 이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올여름 한반도를 덮친 '역대급' 폭염에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끼던 기후위기를 실감했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4.3도에 달했다. 입추와 말복을 넘기고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한낮 체감온도가 35도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서울은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26일 연속 열대야를 겪으며 지난 118년 중 역대 최장 열대야를 기록했다.
직장인 이모(30)씨는 “예전에는 말복이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여 살 만했는데 올해는 여전히 집을 나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폭염 때문에 야구 경기가 취소되는 것도 처음 봤다"며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은 하지만 올해처럼 피부로 느낀 건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조모(35)씨도 “노인들한테는 폭염이 치명적일 수 있으니 조부모님께 조심하라고 연락을 드렸다"며 “폭염이 생사가 달린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해져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고 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일상의 실천에 나서기도 한다.
대전에 사는 직장인 이모(32)씨는 “미래의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되도록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고 탄소 배출이 많은 육식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최근 파리 올림픽이 불볕더위 속에서 폐막한 가운데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 도시 다수가 하계 올림픽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더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CNN 방송이 비영리 탄소프로그램 연구단체 카본플랜(CarbonPlan)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을 비롯한 기존 개최 도시와 개최 예정 도시 24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1곳이 폭염으로 하계 올림픽을 다시 열지 못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 속에서 개인 차원의 노력은 소용이 없는 것 같다며 무력감을 느낀다는 이도 있다.
대학원생 김모(26)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달라진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정작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나라들이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데 개인들이 '에어컨 좀 꺼서 에너지를 아끼자' 하는 게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 차원의 에너지 전환 노력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의 권오성 미디어팀장은 “정부가 폭염으로 인한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닥쳐오는 기후 재난의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석연료 중심 기조를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닥칠 더 큰 폭염을 막을 길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일부 시민은 해결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에 나서기로 했다.
4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907 기후정의행진'은 내달 7일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행진할 예정이다. 행진은 성장과 이윤 중심의 경제 체제가 기후위기를 불러온 원인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대기업 빌딩이 많은 강남대로에서 진행한다.
이영경 907 기후정의행진 기획팀장은 “한국의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는 경제 수준과 국가적 온실가스 배출 책임에 비춰봤을 때 부족하단 평가들이 있는데, 최근에는 신규 석탄발전소까지 가동을 시작했다"며 “탈석탄 계획을 더욱 적극적으로 세워야 하고 탈석탄 과정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