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유럽에 밀린 K-주식…코스닥 12% 하락
밸류업도 안 통해…증시 저평가·투자자 외면 여전
국내 증시가 박스권의 늪에 빠졌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2020년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등장했던 동학개미들은 국내 증시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글로벌 증시가 빠르게 오를 때 국내 시장(국장)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면서 '동학'개미들이 '서학'개미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나스닥 올 들어 20% 수익률…코스피는 제자리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올해 0.17% 상승하는 데 그쳤다. 지난 1월2일 2669.81였던 지수는 지난달 30일 2674.31로 4.5%포인트(p)만 올라 2670대 박스권에서 등락했다. 코스닥은 같은 기간 878.93에서 767.66으로 12.66%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 종합 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각각 19.96%, 19.09% 상승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도 같은 기간 10.20% 상승했다. 다우지수는 지난달 30일 장중 4만1585.21까지 오르며 연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일본 니케이225 지수도 같은 기간 16.10%가 상승했고 유럽 유로스톡스50 지수도 9.86% 올랐다.
지난달 초 증시 대폭락 사태였던 '검은 월요일' 이후 미국, 일본 등 주요 글로벌 증시는 낙폭을 모두 만회했지만 코스피는 반등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국들의 증시 등락률 중 국내 증시만 횡보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증시 저평가·투자자 외면…밸류업 성과도 미미
글로벌 증시 가운데 국장이 유독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이유는 증시 저평가와 이에 따른 투자자 외면 등이 꼽힌다. 국내 증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 등이 증시 저평가 문제 해소에 앞장서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연초부터 추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부분이 큰 문제다. 당초 밸류업이 추진될 당시만 해도 정책이 증시를 끌어올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정작 성과를 보면 실적은 미미한 상황이다. 강제성 없이 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기업들의 참여도가 저조해서다.
이와 더불어 최근 SK, 두산 등 대기업들의 계열사 분할·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주주가치 훼손 논란 등은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7월 논평을 통해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황에 우리 국민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국과 일본 시장을 쳐다만 보고 있다"며 “지배주주들이 진정성을 갖고 거버넌스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비평했다.
상장사들과 주주들의 소통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삼일PwC 거버넌스센터의 '사외이사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상장사에 재임 중인 사외이사 총 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반 주주와의 소통 경험은 평균 22%에 불과했다. 국내 상장사 10곳 중 8곳은 경영진을 제외한 이사회 구성원이 일반 주주와 직접 소통한 사례가 없다는 의미다.
주도주 사라진 시장…코스닥 '단타 시장' 오명 여전
특히 코스닥 시장의 경우 '단타 시장'이라는 오명을 여전히 벗지 못하면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실적에 상관없이 단기 이슈에 주가가 움직이다보니 투자자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신뢰 회복 △우량기업 발굴과 정착 △외국인 투자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을 이끌 주도주가 부족하다는 점도 증시 부진의 요인 중 하나다. 미국 증시의 경우 인공지능(AI)와 반도체 등이 주도하면서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국내 증시의 경우 반도체 대장주로 불리는 삼성전자가 8만원대를 횡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SK하이닉스도 20만닉스를 돌파하며 새로운 대장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반도체 시장에 경계 심리가 유입되면서 지난 7월 고점(24만1000원) 대비 27.7% 하락했다. 지난해 시장을 주도했던 이차전지 업종이 올 들어 부진한 것 또한 증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국내 증시는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내수 경기 부담 등으로 불안한 국내 금융시장 여건으로 국내 증시가 금리 인하의 수혜를 덜 받고 있다"며 “국내 증시가 미 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에 기반한 유동성 흐름에서 소외받고 있는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8월 초 폭락 이후 극심한 가격 조정을 거치면서 밸류에이션 상 지수 하방 경직성은 확보했고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안도감 형성으로 증시 불안이 정상화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국내 증시는 추석 연휴로 인해 9월 초 수급 상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