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미국 상무부, 무상할당 된 배출권 보조금이라고 억지 주장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9.03 08:12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최근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대해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고 판단하며 이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값싼 전기요금과 배출권거래제 하에서의 배출권을 무료로 제공하는 무상할당분이 보조금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통해 경제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 세계무역기구(WTO)는 보조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보조금을 통해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강화할 경우, 효율성에 기반한 자유무역을 왜곡하고 타국 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히기 때문에 규제의 대상이 된다. 이때 상대국은 수입품에 포함된 보조금의 금액만큼 추가로 부과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격 우위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이를 상계관세라 한다.


미국 철강 업계는 한국 배출권거래제의 탄소누출 규정에 따라 100% 무상으로 할당 받은 한국 기업들을 보조금 수혜로 판단해 관세부과 대상으로 주장하고 있다. 탄소누출 (Carbon leakage)이란 한 국가나 지역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기업들이 생산비용 증가를 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다른 국가나 지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데 탄소누출이 발생하면 한국 철강업계는 생산시설을 한국이 아닌 탄소규제가 없거나 약한 인도 등 개도국으로 옮겨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 붙잡아 두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에 한국 배출권거래제에서는 무역 의존도가 큰 기업들에게 100% 무상할당 중이다.



그런데 미국 상무부는 한국 정부가 일반 기업들에게는 90%만 무상 할당하면서 철강업계에는 100%를 무상 할당하는 특혜를 주었기 때문에, 이는 인위적 가격조작을 유발하는 보조금이라는 주장을 한다. 추가로 무상 할당된 10%는 정부가 대가를 받고 지급해 얻을 수 있었던 세수인데, 이를 포기함으로써 세금 감면과 유사한 혜택을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미국 상무부는 추가적으로 무상으로 할당 받은 탄소 배출권 만큼에 상응하는 상계관세를 부과해버렸다.


자국에서는 주어지지 않는 값싼 전기요금에 대해 보조금 판단을 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미국 기업들은 비싸게 발전된 전기를 제 값에 주고 사서 쓰고 있는 반면, 한국은 현재 소매 전기가격이 한국전력 독점으로써 정부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덤핑으로 의심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이렇게 미국과 한국 기업들의 전기소비에 따른 형평성을 따지자면 불공평한 경쟁이라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출권 무상할당의 보조금 판정은 다르다. 미국 철강사들은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규제도 일률적으로 적용 받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국내 철강사들과 아예 비교 대상조차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A 기업에 비해 한국의 B 기업이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이를 상계관세의 대상으로 본다고 판단을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비교하려면 미국의 철강사와 한국의 철강사가 비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무상할당 조정계수가 1이 넘지 않는 상황, 즉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 자체가 규제의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감축된 후 나머지 배출량은 보조금이라고 판정되어선 안된다. 정부로부터 일부 배출권을 경매로 구입해야 하는 기업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했을 때" 혜택을 받고 있다 뿐이지, 절대적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의 규제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물론 OECD 등 국제기구에서도 아직 배출권거래제에서의 무상할당 된 배출권을 보조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연한 논리이다. 이에 대해 반박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존재 때문이라거나, 혹은 배출권의 무상할당이 보조금이 될 수 없다는 원리를 잘 이해 못해서일 것이다.


만약, 이미 배출권거래제가 운영되어 있는 유럽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의 일환으로 관세를 적용한다면, 이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유럽과 한국 모두가 배출권거래제를 적용 받는 중이고, 무상할당률 만이 차이가 나면 유럽과 한국 철강사간의 공정한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의 상계관세 부과는 배출권거래제의 몰지각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오류이고, 자국 내의 학계나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받았는지도 매우 의심된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미국 상무부의 조치이니 순순히 받아들이자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미국의 상계관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바로 꼬리를 내리는 것 또한 업계와 정부 모두의 무지 탓이다.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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