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초격차 딜레마’… 워라밸 vs 기술력 사이에서 허리띠 조인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9.03 14:48

HBM 시장 SK에 주도권 빼앗기며 긴장감

‘워라밸’ 상징 패밀리데이 긴급 폐지 전망

경쟁사 업무강도 강조, 경쟁력 회복 승부수

장기적으로 인재 유출 방지 위한 고민 필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로고 박스. 사진=박규빈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로고 박스. 사진=박규빈 기자

삼성전자가 대표적인 워라밸 정책인 패밀리데이를 없앨 것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 한때 '초격차' 전략으로 경쟁사를 압도했던 삼성전자가 이제는 오히려 경쟁사를 의식하며 위기감에 휩싸인 모양새다. 결국 느슨해진 허리띠를 다시 조이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패밀리데이 폐지 하나…기술 경쟁력 약화 대응책


3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근무 환경 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시행되던 '패밀리데이'(선택적 주4일제) 폐지 가능성이 제기된다.



패밀리데이는 직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도입된 대표적인 워라밸 정책으로 지난해 도입됐다. 만족도가 매우 높은 제도로 직원들 사이에서는 폐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에서는 “패밀리데이 정책 폐지는 사실이 아니다"며 “현재도 많은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제도로 폐지를 위한 설문이나 의견수렴 등도 한 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이슈의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직면한 기술 경쟁력 약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HBM(High Bandwidth Memory·고대역폭 메모리) 주도권을 빼앗기는 등 위기 징후가 보이기 때문이다. HBM 시장에서 후발주자의 입장에 선 삼성전자로서는 큰 충격에 휩싸인 형국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019년 HBM 개발 조직을 축소한 것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며 “시장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한 때 '초격차'를 자랑하던 삼성전자 입장에서 충격적인 상황이다. 권오현 전 대표가 주창했던 '초격차'는 경쟁사가 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것을 의미했는데, 현재 삼성전자는 오히려 경쟁사에 추월당해 격차를 좁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권 전 사장과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꼽히는 정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사로 복귀한 것은 지난 5월이다. 하지만 주역들이 떠난 사이 회사의 상황은 전과 크게 달라졌다.


◇DRAM 1위 지켜도 HBM서 뒤처져…초격차 전략 부활 시도


물론 삼성은 아직 1등 회사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기준 1위를 차지했다. 특히 DRAM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TrendForce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DRAM 시장 점유율은 43.9%를 기록했으며, SK하이닉스는 31.7%, 마이크론은 19.1%를 차지했다.


그러나 AI 시장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HBM 분야에서는 입장이 다르다. 여기서 1등은 SK하이닉스다. TrendForce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주류 4세대 HBM(HBM3)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2024년에도 SK하이닉스는 52% 이상의 HBM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36GB(기가바이트) HBM3E(5세대 HBM) 12H(High, 12단 적층) D램.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고부가 사업인 HBM에 대한 시장지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근무 환경 개선과 함께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전 부회장은 최근 “디램 설계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술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중이다. 다시 초격차로 가겠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2023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을 대상으로 주 64시간 특별연장근로도 시행하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의 경쟁사들도 워라밸은 포기한 분위기다. TSMC의 경우 엔지니어들의 12시간 근무일과 주말 근무가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반도체 분야 최전선에서는 일반적인 상황이기는 하다. AI 업계의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의 근무 환경은 더욱 극단적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 직원들은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근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주 7일, 새벽 2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고 회의 중 고함과 싸움이 일상적이라는 보도도 있다.


◇워라밸 vs 경쟁력…삼성의 딜레마


한편 삼성전자의 변화가 워라밸 트렌드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런 정책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정부의 기조는 그대로다.


삼성전자의 과제는 기술 경쟁력 회복과 직원 만족도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다.


패밀리데이 폐지와 같은 강경책만으로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최근 취업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근무 환경 악화는 젊은 인재들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최근 신입사원 연봉을 인상하고 복지 지출을 늘리는 등 인재 유출 방지에 고심하고 있다. 최근 DS부문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5300만원으로 인상했으며, 복리후생비도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과거의 '초격차' 전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함께 직원들의 창의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며 “삼성전자의 결정은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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