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이사회 여성 참여 88.61%
2011년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여성 ‘제로’서 급변
자본시장법·기업지배구조보고서 등 제도 도입 결과
[편집자주] 국내 대기업들이 올해부터 개정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새로운 지배구조보고서는 최근 정부의 제도 개선 사항과 G20·OECD 원칙 등 국내외 지배구조에 대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새로운 지배구조보고서를 통해 국내 10대그룹의 지배구조 현황과 핵심지표 이행률 등을 짚어본다.
10여년 전 국내 최고의 대기업도 사외이사를 공시할 때 굳이 성별을 공개하지 않았다. 사실상 모든 대기업의 이사회는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던 터라 여성이 진입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국내 최고의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대부분은 여성을 이사회 일원으로 선임했다. 올해부터 개정된 기업지배구보고서 등에서 이사회의 성(性) 다양성을 중시한 결과다.
◇올해 개정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에 '양성 평등' 항목 추가
11일 재계와 관련 당국에 따르면 10대 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여성의 이사회 참여에 큰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2년 동안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개한 10대 그룹 계열 79개사 중 70개사가 지난해 말 기준 이사회가 단일 성(性)으로 구성돼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이행률로 따지면 88.61%로 상위권에 달한다.
이는 국내 최고의 기업들에서도 여성의 이사회 진입한 사례가 없었던 10여년 전과 큰 차이가 있다. 실제 2011년 3월 말 기준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개사의 이사회를 살펴본 결과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10여년 만에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은 기업의 자발적인 변화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정부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이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을 2022년부터 시행하는 등 양성 평등을 위한 제도를 도입해왔다.
올해부터 개정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도 양성 평등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 11번 항목은 지난해까지 '내부감사기구에 대한 연 1회 이상 교육 제공'이었으나 올해부터는 '이사회 구성원 모두 단일성(性)이 아님'으로 크게 바뀌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상장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주 등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도입됐다. 지난 2019년부터는 자산 총액 1조원 이상, 올해부터는 5000억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 한정해 공개가 의무화됐다.
정부는 지배구조 정보의 비교가능성과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 15대 핵심지표를 준수했는지 여부를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명시토록 했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부터는 그야말로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보고서의 핵심에 양성 평등의 가치가 포함된 셈이다.
이 외에도 지난해까지 핵심지표 항목이었던 '6년 초과 장기재직 사외이사 부존재(不存在)'가 삭제되고 '현금 배당관련 예측가능성 제공' 항목이 추가되는 등의 핵심지표 변화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배당 관련해서는 '배당정책 및 배당실시 계획을 연 1회 이상 주주에게 통지' 등의 핵심지표가 이미 있었기에 좀 더 세부적으로 따져보는 것에 가깝다면, 11번 항목은 지난해까지 크게 살펴보지 않았던 이사회의 양성 평등을 새롭게 따져보는 것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기업들 사이에서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 경쟁도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들 사이에서 명망 있는 여성 사외이사를 모셔가기 위해서 선점 경쟁까지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선임되는 경우가 많은 사내이사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갑작스레 변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부분 기업이 사외이사로 이사회에 여성을 합류시키길 희망했다.
다만 10대 그룹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이 검증된 여성 인재풀(pool)이 넉넉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많은 기업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나서면서 경쟁이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중에서도 남성만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가진 9개사는 대부분 여성 전문가가 많지 않은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신세계건설, 자이에스엔디, 포스코스틸리온 등은 건설·철강 산업권이라 여성 인재풀이 더욱 부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여성 사외이사의 증가는 기업의 지배구조인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하고 조직 운영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라며 “사업을 영위하는 분야에서 전문성이 높은 여성 사외이사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