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사자나 범과 같은 큰 짐승을 잡으러 나선 포수는 꿩이나 참새 같은 작은 짐승을 보아도 함부로 총을 쏘지 않는다. 이는 작은 짐승을 잡으려다가 큰 짐승을 놓칠까 저어함이다. 마찬가지로 큰 정치에 발심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큰 발심을 이루는 데에 방해가 될까 하여 작은 정치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엔 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없고 정상배, 모리배, 무뢰배 등 소인들만 참새 사냥으로 우르르 몰려다닌다.
한국 정치사에 3김시대가 있었다. 3김 시대는 제3공화국 군사정권 시대인 1960년대 말부터 민주화 이후 2000년대 전반기까지 30년을 넘게 정치계를 풍미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명의 거물 정치인이 정치 활동을 이어가던 시기다. 이들은 모두 성씨가 김 씨였기에 오류 방지를 위해 머리글자를 따서 일명 YS(김영삼), DJ(김대중), JP(김종필)로 불렸다. 3김 시대는 1969년 11월, 4선 의원이었던 42세의 YS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70년 3선 의원인 46세의 DJ가 출마하면서 3김 정치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뒤,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자 YS-DJ는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JP는 외유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김은 각각 PK, 전라도, 충청도의 지지를 바탕으로 합종, 연횡 했다. YS는 1992년 14대 대선으로, DJ는 1997년 15대 대선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3김시대가 30년 넘게 지속되면서 90년대 중반부터는 3김 정치는 패거리 보스정치, 권위주의의 대명사로 낙인찍히고 “3김이 망해야 한국 정치가 산다."라는 3김 정치가 청산 대상으로 거론되었다. 2009년 DJ, 2015년에 YS, 2018년에 JP가 차례로 영면하여,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3김의 타도 대상이었던 박정희를 포함해서 3김시대는 큰 정치의 시대였다. 중앙정보부장이 청와대 독대에서 YS가 영화배우 이빈화, 조미령과 놀아난 사건과 DJ가 장안의 여인에게서 출산한 혼외자까지 기록된 파일을 들추며 보고하였다. “임자, 그 보고서를 당장 파기하시오! 아무리 정치가 살벌하다 하여도 배꼽 아래를 말하는 건 사내대장부의 할 짓이 못되오!"라고 핀잔을 먹었다. 1960년대는 요정 정치'가 횡행했던 시절이라서 상대 정치인의 사생활은 노출되었지만, 입에 올리지 않는 게 관례였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일은 더욱 그랬다. 3김은 박정희 대통령의 본처 김호남과 장녀 박재옥 문제로 육영수 여사를 폄하하지 않았다. 정치가 격렬했지만, 진검승부였고 치졸하지 않았다.
지금은 새로운 3김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신 3김시대는 문 대통령의 김정숙,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김혜경, 윤 대통령의 김건희 여사가 모두 김 씨라서 연유한다. 3김 시대가 진검승부의 큰 정치 시대라면 신 3김시대는 치졸한 참새 정치 시대다. 야권이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을 추진하자, 여권은 김정숙 여사의 단독 인도 방문을 고발했다. 김혜경 게이트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법인카드'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우자 등에게 음식을 제공한 혐의다. 문 대통령과 이 대표에 대한 진검승부가 아닌 그들의 가족에 대한 기소는 - 진실에 상관없이 - 참새 정치에 속한다. 소리만 요란하지, 실속이 없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1990년대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초입 단계에 진입하여 있다. 한국 경제는 퍼펙트스톰에 직면했는데, 정작 국정운영 총책임자인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참새에게 총질이나 하고 있다. 국회는 야당이 발의하면 여당은 '묻지 마 반대'하고,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은 '묻지 마 거부'하고, 국회는 다시 재의결하지만 결국 폐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 3김 정치에서는 정치인은 없고, 정상배만이 활개를 친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큰 정치인이라면 참새에 총질을 멈추고, 하루속히 큰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