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문가, 주주 이익 보호에 방점
경제단체 “경영 혼란”…설득력 의문
해외연구 이사 충실 의무 확대 확인
경실련 “기업 가치 상승 기여할 것”
정부가 상법 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노력 의무'를 추가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가운데 경제단체들의 반대가 여전하다. 하지만 이들의 논리가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 상법 개정 추진에 경제단체 '총력 반대'
17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경제인협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기업 지배구조 규제 강화 법안 발의 자제를 요청했다. 경제단체들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의 법안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단체 관계자들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한다"며 “경영 혼란과 소송 남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정부는 상법 개정 논의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감안해 “이사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2항으로 신설하는 상법 개정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주주까지 확대하자는 야당 안과 재계의 우려 사이의 절충점을 찾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전혀 굽히지 않는 경제단체들의 주장은 여러 연구 결과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 “이사 충실의무 확대, 오히려 필요"
먼저 채이배 전 의원(전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 2013년 발표한 “상법 제382조의 3 (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필요성" 연구보고서를 보면 “현행 상법상 충실의무 규정이 이사와 지배주주의 사익추구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 전 의원은 “이사 및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방지를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개정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훈 경북대 교수가 한국상사법학회를 통해 2022년 발표한 “충실의무 조항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명시하는 법안에 대한 검토" 논문에서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 이익 보호 내용을 추가하는 법안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자본거래를 통한 일반주주 이익 편취 방지, 이해상충 판단기준 개선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가 공동 개최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견해가 제시됐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국내 상장기업 거버넌스의 핵심 문제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및 부의 이전"이라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회사법에 일반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역행" 주장, 해외 연구로 반박돼
특히 경제단체들이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역행' 논리도 해외에서 발표된 논문 등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존 아머(John Armour) 옥스퍼드 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등은 2018년 발표한 '주주와 회사에 대한 이사의 의무: 비교 분석'(Directors' Duties to Shareholders and the Company: A Comparative Analysis) 연구에서 “여러 국가에서 이사의 의무 대상을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는 오히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앤드류 S. 골드(Andrew S. Gold) 브루클린 로스쿨 교수는 2009년 발표한 '회사법에서의 새로운 충실의무 개념'(The New Concept of Loyalty in Corporate Law) 논문에서 “이사가 주주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주에게 정직해야 하고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새로운 충실의무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기업 가치 상승에 기여"…소송 우려도 반박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로 오히려 우리나라의 관련 법제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업 밸류업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단체들은 소송 남발과 경영 불확실성 가중을 우려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오히려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확히 함으로써 불필요한 소송과 경영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들의 반대 논리는 최근의 연구 결과와 글로벌 트렌드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설명했다.